2019.12.24. 성탄 밤

대한성공회 송파교회

본기도

영광의 하느님, 아기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거룩한 밤을 주님의 참 빛으로 비취셨나이다. 비오니, 이 빛으로 우리를 이끄시어 하늘의 영광을 찬미하며, 이 땅에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으로 이제와 영원히 사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9:1-6
  • 시편 – 96
  • 2독서 – 디도 2:11-14
  • 복음서 – 루가 2:1-20

 

성탄 밤입니다. 전례독서 주제는 ‘평화의 임금 나셨네,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 보자’입니다.

지금부터 저와 같이 상상을 해 보겠습니다. 오늘 밤 특별한 축하잔치가 있을 예정입니다. 어떤 축하잔치냐면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은 왕으로부터 잔치에 초대할 ‘귀빈 명단’을 정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으십니까?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가장 먼저 누구의 이름을 초대 명단에 적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잔치의 ‘격식’에 맞을 것 같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입’니까? ‘프란시스 교황’입니까? ‘구글 회장’입니까? ‘송가인’입니까? 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입니까?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셨습니까? ‘유력자들’을 떠올리셨습니까? 하느님이라면 누구를 가장 먼저 초대하실 것 같습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독서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지금부터 2천 년 전, 유다 베들레헴에서는 ‘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예언자는 이미 700여 년 전에 오늘 태어날 아기, 즉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왕으로 불릴 것인지 예고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 이사 9:5

예언자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아직 아기가 등극(登極)하기도 전에 ‘제왕(帝王)의 칭호’(帝號)까지 먼저 나열할 정도였습니다. ‘제호’(帝號)는 이렇습니다. 새 왕은 놀라운 업적을 이룰 탁월한 ‘경륜가’(Wonderful Counselor), 하느님의 권능으로 무장한 ‘용사’(Mighty God), 자녀들이 번영하도록 돌보시는 ‘영원한 아버지’(Everlasting Father)입니다. 특히 ‘평화의 왕’(Prince of Peace)이라 불릴 것인데, 이 ‘제호’(帝號)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언자는 아기가 ‘평화의 왕’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가 장차 수행할 통치방식을 가지고 답변합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 이사 9:6a

이것이 새 왕과 함께 일어날 ‘왕국의 변화들’(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언자는 벌써 ‘다윗 왕국의 재건’을 내다보는 ‘기쁨’과 ‘희망’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새 왕은 ‘다윗의 왕좌’에 앉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의 계승자입니다. 그 왕좌에 앉아 하느님께서 다윗과 맺은 ‘영원한 계약’을 지킵니다. ‘공평’과 ‘정의’를 ‘국정(國政) 운영 방식’으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국권’은 강대해지고 ‘평화’는 끝이 없습니다. 그 통치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전쟁의 위협 없이 ‘평화’를 누립니다. ‘자유’와 ‘구원’과 ‘번영’과 ‘온전함’이라는 ‘완전한 샬롬’을 누립니다. 정말이지 이런 ‘평화의 왕’은 세상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언자는 누가 ‘평화의 왕’을 보내시어 이 모든 변화를 계획하고 주관하신다고 선포합니까?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 이사 9:6b

하느님은 미지근한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계획이 없는 분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온 인류를 위한 ‘가장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계획하신 일을 ‘정열’(열성)을 쏟아 ‘완성’해 가시는 분입니다. 2천 년 전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참된 ‘평화의 왕국’을 위한 이 모든 변화의 일을 시작하셨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입니다.

사도 바울로도 하느님이 보내신 이 ‘평화의 왕’에 대해 2독서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전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셔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져 내시고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디도 2:14a

그렇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를 닮아서 ‘정열’(열정)을 쏟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어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정결하게 하시어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으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선행’에 ‘열성’(정열)을 기울이게 하십니다(디도 2:14b). 그렇게 “선한 일에 열성”을 쏟으며, 하느님께서 ‘정열’을 쏟아 부으시어 완성하실 평화의 왕국이 실현될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한마디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게 하십니다(디도 2:13).

이처럼 태어날 아기는 사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완전한 샬롬’을 세상에 이루실 ‘평화의 왕’입니다. 이 정도의 왕이시기에 사람들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에 가장 먼저 포함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 ‘귀빈 명단’ 제일 앞머리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당대의 유력자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들입니다. 《루가복음》은 그들을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초대는 당시의 통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입니다. 전혀 ‘뜻밖의 초대명단’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목자’들은 ‘최하층민’에 속했고, 평판도 좋지 않은 직업군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집을 나서면 몇 달씩 양떼를 몰고 다녀야 했습니다. 빈들에서 양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잘 씻지도 못했습니다. 몸에서는 늘 양들의 냄새가 났고,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어기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고리대금업자, 세리, 어부, 오물 처리 꾼, 백정, 의사처럼 직업상의 죄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심한 경우는 ‘거지’라고, 양 새끼를 훔치는 ‘도둑’이라고 오명을 쓰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왕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루가복음》의 성탄이야기에서는 아닙니다. 성가정이 헤로데의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에 계셨던 것과 어울리게 탄생 소식도 당대 ‘최하층민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습니다. 목자들은 ‘평화의 왕’이 탄생하신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왕의 탄생 축하에 초대 명단의 제일 앞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목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목격한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전파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천사가 나타났을 때 겁에 질려 떨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방문’이었습니다. 천사는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 루가 2:10

잘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입니다. 목자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킬 정도로 자기 일에 ‘정열’(열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비록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계절은 언제쯤입니까? 베들레헴 가까운 ‘들’에서 양들을 방목하며 밤을 새울 정도였으니 ‘건기’(4월~10월)이고, 우리 식으로는 ‘여름’에 보다 가깝습니다.

이렇게 자기 일에 ‘열성’을 다하고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전한 ‘큰 기쁨의 소식’은 무엇입니까?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 루가 2:11~12

이것이 ‘큰 기쁨의 소식’, 즉 천사가 전한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입니다. 천사는 어찌나 감격했던지 1독서 《이사야》 예언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는 아기가 아직 ‘즉위’(卽位)하기 전인데도 ‘제왕(帝王)의 칭호’(帝號)를 먼저 붙였습니다. 이것처럼 천사도 태어난 아기를 ‘구세주’(구원자, 해방자, 보호자), ‘주님’(하느님, 통치자), ‘그리스도’(메시아)라고 선포했습니다. 한 마디로 아기를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는 ‘다윗의 고을’, 즉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의 선포, 즉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이 선포되자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의 군대도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성품을 따라 ‘정열’(열정)을 쏟아 찬양합니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오랜 약속, 하느님의 계획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찬양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 루가 2:14

우리가 주일 성찬례 때마다 찬양하는 ‘영광송’(Gloria) 첫머리입니다. ‘영광송’(Gloria)이라는 제목은 이 찬양의 라틴어 문장인 ‘글로리아 인 엑첼시스 데오’(Gloria in excelsis deo)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성찬례 때마다 구세주 탄생의 기쁨을 찬양하는 천사가 되는 셈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시편》 마지막에 바치는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은 ‘송영’이라고 합니다. 이 ‘송영’을 기도처럼 바치면서 ‘영광송’(영광경)이라 지칭할 때는 성찬례 때 바치는 ‘영광송’은 ‘대영광송’이 됩니다.

온 세상이 울리도록 열정 가득한 찬양을 마친 천사들은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 뒤에 목자들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 루가 2:15

그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달려 간 베들레헴에는 호적 등록을 하러 온 성가정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요셉의 본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요셉의 친척들은 성가정을 집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여러분도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약혼 기간일 뿐인데 마리아가 벌써 9개월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상한 풍문도 돌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성가정은 여관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여관도 머무를 ‘방’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호적 하러 들린 사람들의 ‘가족용 객실’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성가정은 ‘마구간’이 있는 ‘동굴’에서 가축들과 함께 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고향에서조차 ‘환대’(歡待) 받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은 마음이 바빴습니다. 마침내 마리아는 몸을 풀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요셉은 건초더미를 치우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조심스럽게 눕혔습니다(루가 2:7). 세상에 오신 구세주께서 처음 시작부터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과 하나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하느님의 ‘풍성한 환대’를 보여줄 분으로 오셨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장애인과 병자들, 어린이와 여성들, 사회적 약자들이 그 풍성한 환대를 경험하도록 ‘뜻밖에 초대된’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목자들은 그 환대를 누릴 ‘초대 명단’ 첫 자리에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마구간에서 마리아와 요셉, 아기를 본 목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목자들은 고요히 잠든 아기예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싱글싱글 미소를 짓습니다. 천사에게 들은 말을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합니다.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입니다. 목자들의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목자들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목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습니다. – 루가 2:20

목자들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천사들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목자들이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의 여정을 베들레헴에서 끝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며 달려왔습니다. 불현 듯 찾아 온 초대였지만, 기꺼이 응답했습니다. 어찌 안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마구간에 몰려 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듣고 보고 한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최초의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습니다. 자신들이 듣고 본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의 여정을 열성적으로 걷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분명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성탄 밤 설교를 마칩니다. 우리도 오늘 목자들처럼 왕의 탄생을 축하하러 오라는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뜻밖의 초대는 아니고 대림 4주간 동안 예고된 초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초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인류에게 구원을,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주러 오신 분께 마음을 열도록 초대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도 ‘천사’로부터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천사’라고 번역한 그리스어 ‘앙겔로스’는 ‘사자’(使者, messenger), ‘심부름꾼’이라는 뜻입니다. 복음 말씀을 낭독한 사제도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따라서 사제도 천사입니다. 천사가 전해 준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에 어떻게 응답할 것입니까? 복음서의 목자들처럼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 보아야 합니다.

성탄이야기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구원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기쁨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희망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구세주, 주님, 그리스도가 계신 곳입니다. 세상에 오신 참 빛이 계신 곳입니다. 사랑이 계신 곳입니다. 그 베들레헴이 어디입니까? 사제와 함께 ‘구유경배 예식’을 하러 갈 마구간이 있는 곳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여기’여야 합니다. 우리가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기쁨이신 그리스도를,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곳은 어디나 베들레헴입니다. 더욱이 지금 여기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가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가 희망을, 기쁨을,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목자들처럼 우리가 듣고 본 것에 대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느님처럼, 천사들처럼, 정열을 쏟아 기쁜 소식을 전하는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의 여정을 향해 우리는 출발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입니다. 독생 성자를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관통하여 흐르기를 축복합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는 빛나는 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베들레헴의 기쁨이 살아있습니다. 이 베들레헴의 기쁨을 맛보도록 초대할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성탄 축하의 밤이 끝나고 우리가 가족들 사이로, 이웃들 사이로, 친구들 사이로 파송되었을 때가 더 중요합니다. 그 때가 비로소 목자들처럼 우리의 진짜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길 잃은 사람들에게 길이신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일, 상처 난 영혼들의 벗이 되고 영혼의 치유자인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일이 우리의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입니다. 굶주린 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누고,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일,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 오고, 참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는 일이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입니다.

부디 사람들 마음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노래가 흐르게 하십시오. 뜻밖의 초대를 사명의 응답으로 감당한 목자들처럼, 이 ‘크리스마스 사명’(使命)을 정열을 쏟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