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9
서울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 여러분 위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승좌한 저는 순교자들의 위대한 신앙을 기념하는 ‘한인 순교자의 날’과 대한성공회 기념일을 맞아 우리 교회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이 시선을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낡은 신앙과 정신 그리고 제도에 안주하는 교회는 반드시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합니다. 지금 우리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고, 교회 안팎으로 개혁과 쇄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몇 가지 불미스러운 문제로 갈등과 아픔, 상처를 입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의 권위는 추락했고, 서로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 오신 교우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교구장된 저는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하고,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며 우리가 처한 이 어려운 상황을 새로운 희망을 위한 쇄신과 개혁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개혁을 이루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우선적으로 과거의 문제를 깨끗이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문제에만 매여서는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물론 구리시 노인전문요양원 문제를 비롯하여, 세실빌딩에 입주한 요식업체와의 공동 경영문제 등 교우 여러분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문제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의혹과 불신의 온상이 되었던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조사하여 해결책을 모색할 목적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와 교구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직하게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서울주교좌성당을 가로막던 전 국세청 건물이 철거되어 우리 교회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고 서울시 측의 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성당 마당을 공원화하고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후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대성당 건물에 손상이 갈 염려가 있어 심사숙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뼈아프지만 값진 교훈들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교회공동체 안에 만연한 안일함과 행정의 불투명성, 불합리한 관행이 근본적인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교구 행정시스템과 의사소통 구조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투명성을 이루기 위해 행정 시스템 개선과 의사소통과 의결 과정을 민주적으로 진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와 더불어 교회는 매우 높고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만큼 앞으로 금전 문제나 성 윤리 문제,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이런 문제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아울러 선교에 대한 불붙는 열의와 신앙적 동기보다는 사업적 발상과 복지관과 수익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많은 문제를 낳았고 교회에 분란을 야기 시켰음을 기억하며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직자 그리고 교우 여러분!
저는 지난 4월 25일 주교로 성품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주교직이 얼마나 엄중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매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기운이 차고 넘치고, 소망이 가득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 기쁨이 되는 교회를 전해 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새로운 선교의 비전과 방향을 위한 고뇌를 하루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회의 현실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성직자는 55명 더 늘었지만 주일 평균 출석자는 48명 감소, 재저수는 266명 감소했습니다. 지역 교회들 가운데도 몇몇 교회는 아주 조금 성장을 했지만 성장이 기대되었던 몇몇 교회들은 아주 현저하게 교인수와 재정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회들에 노령화가 가속되어 급격하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없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자 수 감소가 한국 교회 전반적인 추세라고 하지만 우리 교회는 더욱 절박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교회와 교구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교구가 주님의 교회로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예언자들의 외침대로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이 제자로서 부름 받았다고 하는 소명의식을 다시 확인하고 선교 역량을 극대화 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참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어떤 성장전략도 의미가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전례의식에 참여하고 낡은 교리를 지키거나 희생 없는 은총을 구하는 것은 ‘값싼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실현할 때 ‘값 비싼 은총’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교회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의 신앙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개혁과 성장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밝혀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우리들의 가장 큰 과제는 새 신자를 영접하고, 미래 세대에게 우리의 신앙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존립의 문제입니다. 향후 10년 안에 더 많은 신자를 얻거나 전도하지 못하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는 것이 지난 2012년도 조사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새 신자를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성장하는 교회의 사례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외부 사람이 새롭게 성공회 신자가 될 가능성은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다녔던 신자들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떠나 좀 더 새롭고 건강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정의로운 실천을 하는 교회, 좀 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교회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신앙인들이 한국교회 안에 700만 명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유랑하는 신앙인들이 성공회를 찾아오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 성공회는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등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거친 경쟁과 승리주의를 벗어나 따뜻한 영성의 샘물을 맛보게 하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는 사제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선교역량 강화입니다
사제의 역량에 따라 교회의 사목이 달라짐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제들의 신학 이해와 깊이, 건강한 사목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깊은 영성과 넉넉한 인격을 갖도록 지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점에서 사제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구 당국뿐만 아니라 개교회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비다. 우리들 안에 주교의 사목에 대한 이해와 사제단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동체 의식은 우리 성공회가 표방하는 주교제 교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특별히 사제단 안에 성공회 신학, 전례 그리고 가치를 추구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 사목에서 상호 협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다양한 달란트를 발굴하고 계발하여 하느님의 뜻을 향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하여 사제와 사제 간에, 사제와 신자들 간에 협력 사목을 함으로써 이 은총의 선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선한 결과를 이루어낸다면 하느님의 교회로서 성장하고 성숙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신도의 지도력을 양성하고 건강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명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주교와 성직자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상호신뢰, 상호 존중, 상호협력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는 교구장 주교로서 이런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나쁜 관행과 전통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성직자 인사제도의 개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직자 인사는 교회의 선교 역량을 극대화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최적의 인사는 각 교회 공동체가 선교 비전을 세우고 이에 걸맞는 성직자의 사목철학과 역량을 조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행 파송제는 장기 사목을 보장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성향이 다른 성직자들이 해당 임지에 파송됨으로써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교회 공동체가 선교 비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가 성직자를 초대하기에 앞서 선교 비전을 세우고 신앙적 성숙을 기해야 합니다. 또한 성직자 역시 본인의 사목철학과 비전과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받고 주교의 조정을 임지를 정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성직자 인사의 방향입니다. 더불어 역량과 소양이 다른 성직자 간의 조합으로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사목을 하는 방안도 적극 도입할 예정입니다. 교회 또는 선교 단체가 위치한 지역 속에서 서로 간의 연대 또한 바람직한 방식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성공회성’의 구현입니다
우리 성공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복음의 유산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로 지난 5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성공회만의 고유한 전례와 신학 그리고 가치를 형성해 왔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경험과 전통을 이어받은 대한성공회가 한국교회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성공회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복음의 정신과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복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가? 진정으로 교회다움 – 성공회다움을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 성공회는 개인의 체험이나 개교회주의를 넘어서 주교를 중심으로 일치와 친교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례는 신자 개인의 신앙적 요구(개신교)나 성직자 한 사람만으로 가능한 전례(로마 가톨릭)를 거부하고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전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성공회는 세상의 사회적 약자, 환대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세례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 생태계 전체가 총체적으로 구원받는 것을 꿈꾸기 때문입니다.(성공회의 선교정신) 1980년대에 설립된 나눔의 집은 우리 교회가 보여준 헌신과 사랑의 표상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이 확대되면서 복지관이 곳곳에 설립되었고 적지 않은 수가 우리 교회에 맡겨졌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얻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지 시설이 정부가 하는 일을 대행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성직자 인사의 한 방편으로 인식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선교 기관도 우리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분명한 선교의지와 신앙 정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대한 성공회가 한국 역사 속에서 구현해 온 선교의 모습은 타 교파와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공동의 선을 위해 연합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한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토착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고 약자들을 돌보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와 이웃을 섬길 때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신자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교회로서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낡은 관습과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제도뿐만 아니라 침체 되어 있는 영적 에너지를 한껏 끌어올려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개혁의 첫걸음이자 축복의 완성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제자로 삼으시길 바라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의 앞깊을 밝혀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끝으로 교구장 주교와 교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2017년 9월 29일 성 미카엘과 모든 천사들 축일이자 대한성공회 설립기념일에
대한성공회 서울 교구장 이경호(베드로) 주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