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 주일에 성찬례를 마치고 나오는 데, 신부님께서 저와 제 가족을 붙잡으시고는 강화도에 바람쐬러 가자십니다. 에드워드 수녀님과 신부님 내외분,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강화도로 나섰습니다. 사실, 봄 즈음부터 신부님은 강화도, 강화도 하셨었드랬죠. 성공회 초신자인 저에게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으셨나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그날, 초지대교를 지나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시래기밥에 나물, 도토리묵, 감자전을 곁들여 점심을 챙겼으나… 우리의 나들이 목적은 주린 배 채우기가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 배를 채운 우리는 강화읍성당, 온수리성당, 내리성당을 순서대로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강화읍 교회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
강화읍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에 들어설 때, 관할사제님은 바쁘셔서 동석하지 못했습니다. 강화읍성당은 제가 어쭙잖게 소개하느니, 2006년 서울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시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제가 설명을 들었거나, 느낀 것들로 대신할게요.
성당의 측면 사진입니다.
찍은 각도는 제대가 있는 앞쪽에서 찍은 것이라, 성당에 들어서는 입구는 여기서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 담으려고 해봤지만, 아쉽게도 지붕 위에 올린 강화읍성당의 독특한 십자가는 들어와 있지를 않네요. 강화읍성당은 좀 높은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땅모양까지 감안하면 전체적인 모습은 노아의 방주를 상징하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저 청록색 문짝이 신기했습니다. 분명 한옥이지만, 문은 유럽에서나 보암직한 모양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화읍성당은 영국인들의 손으로 지어졌습니다. 뒤에 소개하겠지만, 조선의 성공회교인들이 지은 최초의 성당은 온수리 성 안드레 성당입니다.
성당 내부 모습은 이렇습니다.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한옥으로 구성한 모습입니다. 들어서자마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저것은 세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성수단입니다. 성수단에는 “修己洗心去惡作善”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자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단정히 하여 악을 쫓고 선을 이루라.’고 풀이를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洗心”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몰라서… 신부님 말씀으로는 세례의 의미를 담은 구절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세례단과 신자석 너머에 제대를 모신 지성소가 있습니다. 제대는 고전적으로 앞쪽을 향해 있어서, 신부님이 평신도를 등지고 집전한답니다. 지금은 그런 성당이 몇 없을 겁니다. 여기는 여전히 옛날과 같이 앞을 보고 감사성찬례를 드린답니다.
지성소와 신자석 사이에는 영광문이 놓여있습니다. 영광문 위에는 예수의 십자고상과 요셉, 성모 마리아 상이 놓여있지요. 세례단, 영광문과 지성소… 이 배치는 다 의미가 있더라구요. 좀 설명이 필요한데, (미사라고도 하는) 감사성찬례는 늘 영성체를 영하는(개신교에서는 성찬식이라고…) 때가 되면, 신부님이 저 문을 열고 세례받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영광문이 열린 자리에서 성찬이 이루어집니다.
영광문 위쪽에는 사진처럼 십자고상과 성 요셉, 성모 마리아상이 있습니다. 세례단을 지나 영광문에 이르러 성찬을 하는 데에는, 세례를 통해 과거의 나를 벗어버리고 선을 이루도록 결단한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통해 영광의 문을 지나 영생에 이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뭐… 천주교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이제 성공회 구성원이 된지 이제 겨우 일년이 된 제 입장에서는 비유와 상징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원래 강화읍성당은 주교좌성당으로 삼으려고 했었답니다. 지성소 좌측에 보이는 저 의자가 원래 주교좌가 될 뻔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주교좌 성당의 성인이 2명이죠. 뭐… 그렇다구요. ^^;
강화읍성당에 쓰인 목재는 모두 백두산 홍송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건물관리인이 건물이 낡았다고 페인트칠을 해버리는 통에 제 빛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페인트는 다시 벗겨내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옛모습을 찾기는 어렵겠죠?
강화읍성당의 수호성인인 베드로와 바울로입니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검을 손에 쥐고 있고,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손에 쥔채, 닭 한 마리와 함께 서 있습니다. 베드로가 닭과 사연이 있는 건 다 아실테죠.
감사성찬례 시간 중 성서정과 말씀을 읽는 독서대입니다. 한자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라 씌여 있습니다. 이 독서대에는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가 스며있기도 합니다. 독서대 좌우에는 일본황실을 상징하는 꽃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서 그렇습니다.
이 휘장은 강화읍성당에서 사용하는 휘장이라는데, 의미와 용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신부님에게 설명을 들어야 할 것같습니다. 다만, 강화읍 성당의 성인인 바울로를 상징하는 말씀의 검과 베드로를 상징하는 천국 열쇠를 이용한 휘장이죠. 재미있는 건, 열쇠에 새겨진 저 만(卍)자입니다. 성공회가 한국에 전파될 때, 어떻게 하면 토착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의 문화에 복음을 심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이죠. 초창기 성공회 선교사들은 불교나 유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한국의 문화 속에 복음을 심으려고 했던 것이겠죠? 이런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죠.
교회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범종에 가깝습니다. 종을 치는 자리에는 성공회를 의미하는 둥근 십자가 문양이 있습니다. 종 상단에는 영국식 켈틱 십자가 문양에 물고기와 포도나무 가지(?)를 새겨넣었습니다. 그리고, 불경을 새겨넣듯, 요한복음 1장 말씀을 새겨넣었죠.
교회종은 매일 일정한 시각에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쳤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경조사가 있을 때 쳐서 알렸다고 합니다. 강화읍성당이나, 온수리성당 주변을 보면 다른 개신교단 교회들이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교 초창기부터 모든 마을 행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서 다른 교회들보다 지역에 밀착할 수 있었답니다.
강화읍성당 나들이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천주성전”이라 쓰인 성당현판이 보이는 성당 앞쪽에서 에드워드 수녀님, 애단 신부님, 모니카 사모님, 엘리자베스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a
강화읍성당 바로 밑에는 조선후기 철종의 생가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기의 마지막 왕이 철종입니다. 철종 다음에 조선을 다스린 권력자가 흥선대원군이죠.
온수리 성 안드레 성당과 내리 성 패드릭 성당
온수리성당은 순전히 조선 성공회 교인들이 세운 성당입니다. 그래서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은 소박하지만, 자부심강한 교회랍니다.
참 소박하죠? 내부 구조는 넓은 한옥에 가깝습니다. 강화읍성당과 마찬가지로, 지방문화재입니다. 현재 이 성당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대적인 성당을 지어서 그곳을 사용하지요. 전경을 보여드리면 이렇습니다. 새 성당의 수호성인은 베드로입니다.
사진을 붙여서 파노라마를 만들었더니, 중간 중간 어긋났습니다. 온수리교회에서는 지역사회를 위한 학습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화기에는 학교를 운영했었고, 이 교회의 초기 구성원 중에는 독립운동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리성당에서는 그다지 사진 촬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딱 한 장만 남겼는데, 전통적인 대한성공회 십자가 문양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찍어두었습니다.
이곳은 현대적이죠? 제대에 새겨진 십자가가 대한성공회의 십자가입니다. 연꽃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 십자가가 강화읍성당 지붕에 얹어져 있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질 않았죠. 내리성당 제대는 다른 성당과 달리 조금 특이합니다. 제대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에 촛대를 올려놓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촛대를 따로 세워두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애단 신부님과 오랫 친분이 있는 관할신부님의 오르간 연주도 들으며 쉴 수 있었습니다.
내리교회에서는 관상기도를 위한 묵상방이 장만되어 있습니다. 양 옆으로는 큰 창이 있어서, 한 편으로는 바다를, 다른 한 편으로는 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벌써부터 다시 가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