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편지

신약성서의 서신들 곱씹어보기

성도의 교제

성도의 교제

우리는 ‘사랑의 줄’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진실입니다. 이미 우리가 이 사랑 안에서 하나의 몸임을 깨달을 때, 공존과 화합이라는 우주의 본 모습은 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배려와 관용의 하느님을 살아야 하는 그분의 지체들입니다.

용서

용서

용서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용서하는 일도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의 용서는 지옥으로 기울어진 그대의 저울추를 한 눈금 천국으로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통해 풀려나는 죄수는 바로 그대 자신입니다.

내면의 소리

내면의 소리

모든 나무는 자기만의 생명의 소리를 가졌습니다. 다른 나무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도 떼보지 못했지만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을 신뢰하며 살아온 나날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 자기 모습을 실현하며 수십 년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신뢰하며 살아온 모든 나무는 아름답습니다.

자녀 양육

자녀 양육

좋은 자녀로 키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좋은 부모가 되는 훈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자녀는 제가 경험한 사랑대로 사랑하며, 그 사랑을 다시 사회로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고상한 것과 영원한 것과 하늘의 소리에 마음을 열고서 살아가기를 빕니다.

부부

부부

모든 부부는 행복을 일구고 있습니다. 땀 흘려 서로의 모습을 순결하고 아름답게 지켜 나가다보면 행복의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그러니 열매에 연연하지 말고, 일하는 동안 밭에서 찾아낸 ‘지혜’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부부가 되십시오. 그 지혜는 ‘때’의 분별과 ‘인내’의 소중함입니다. 자녀는 이것을 ‘부모의 뒷모습’을 통해 배웁니다. 뒷모습은 숨길 수 없는 ‘속마음의 드러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이 지혜를 배운 이들만이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어가는 오늘의 가정들 속에서 푸르른 나무가 되어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걱정

걱정

걱정은 ‘잘못된 생각’, ‘불합리한 의미주기’에서 싹터난 일종의 감정 상태입니다. 정보에 대한 삭제, 왜곡, 일반화의 오류가 일어난 인지적 결과라고도 불립니다. 만일 '그 일'을 이치에 맞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대는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오류 중에서 대표적인 생각이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이고, 약하다”입니다. 그대가 상대해야 할 그 일을 거인 ‘골리앗’처럼 여기고 지배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대는 점점 걱정의 늪에 빠져듭니다. 이처럼 '자기 존재의 망각'에 기인한 인지적 오류가 모든 걱정의 뿌리입니다.

거짓 선생

거짓 선생

수많은 ‘선생’들이 자신이야 말로 그 문으로 들어가 ‘빛의 조명’을 받은 ‘스승’이라며 가르침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려왔습니다. 뿌려진 씨앗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저절로 돋아나 자라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선생의 가르침이 참 생명으로 피어날 씨앗인가를 처음부터 ‘분별’해야 할 몫을 떠맡습니다. 만일 그 씨앗이 독초로 피어날 씨앗이었다면 큰 낭패를 봅니다. 언제나 하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늘 자기 생명을 담보(擔保)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감사

옛 사람들은 생(生)이라는 글자를 풀이할 때,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힘겹게 건너는 것에 비유 했습니다. 날마다 처음 맛보는 오늘이기에 누구에게나 낯설고, 사는 방법 역시 서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 하루를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의 삶은 처음 받아든 한 장의 악보와 같습니다. 하루하루는 이 악보 속의 길고 짧은 음표에 해당되지요. 어떤 음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쉽게 연주할 수 있지만, 어떤 음표는 뒤얽힌 실타래 같아 좀처럼 연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대는 어떻게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