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일 감사성찬례 말씀의 전례 설교 모음

2018.8.5. 연중18주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 제공해 주신 ‘생명의 빵’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밥’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유’에 놓였다는 말이 바로 그 뜻입니다(루가 2:12,16). 구유는 마소의 밥통입니다. 마소(馬牛) 같은 존재로 전락한 인간이 '진정한 밥'이신 예수를 먹고 구원의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길이 신앙입니다.

2018.7.29. 연중17주일

교회사에서 오병이어 기적이야기를 두고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실제 일어난 기적’으로, 어떤 이들은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바치는 성찬례 잔치의 풍성함을 미리 지시해 주는 상징으로 이 이야기를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와 성찬례는 많은 부분 포개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입니까? 사실 우리가 어떤 입장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기적 이야기의 목적은 예수님이 “생명의 빵”(요한 6:35)이심을 알아듣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2018.7.22. 연중16주일

우리 신앙의 최대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겠다는 이들이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서는 예수님이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가장자리’로 내몰린 군중을 ‘측은히’ 여기시어 가르치시고, 먹이시며, 치유하시는 목자의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증언합니다. 교회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사회에서 ‘변두리’로 내몰린 ‘힘없는 이들’(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 마태 25:31-46)에게 ‘복음’(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2018.7.15. 연중15주일

오늘 복음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나는 누구를 닮았는지 성찰해 봅니다. 요한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욕망에 빠져 허탄한 맹세로 타인의 목숨을 폭력적으로 빼앗는 헤로데 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파송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이 세상에 파송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8.7.8. 연중14주일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로 여겨졌습니다. 사도들에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가족과 고향’에게 오해와 배척을 받았습니다. 사도들도 씨 뿌리는 사람처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나갈 것입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처럼 마음이 피폐한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오해하고, 고향에서조차 푸대접할 것입니다. 심지어 ‘세례자 요한’같은 예언자를 죽이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포기해야만 합니까? 외면하는 세상의 현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처럼, 그 길을 단단히 ‘각오’하고 쉼 없이 가야 합니다.

2018.7.1. 연중13주일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고생해 온 여인이 ‘온전한 삶’을 선물 받습니다.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은 12살 소녀가 다시 ‘생명’을 선물 받습니다. 예수님이 ‘샬롬’이 없는 인류에게 ‘온전한 삶’을 선물해 주시는 분이며, 죽음을 정복하신 ‘메시아’이심을 들려주는 치유 이적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진정한 ‘샬롬’으로 이끌어주시고, 이 세상에 샬롬을 가져오는 거룩한 도구로 살게 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18.6.24 성 세례요한 탄생/맥추감사주일/연중12주일

태어난 아기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세례명’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야할 인생길을 발견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빛 아래에서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시편 85:10-11). 지금 잘 걸어가고 있습니까? 혹시 다른 길을 엿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2018.6.17. 연중11주일

하느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미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가 뿌리내리고 마침내 엄청난 결실을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오늘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어섭시다. 미약한 우리를 통해 지금도 진행 중이고, 점점 더 커져서, 종국에는 엄청난 결말을 가져올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차리는 눈을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018.6.10. 연중10주일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피조물로서 지켜야할 한계를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와 세상의 생명을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며 날마다의 삶에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간청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떠야할 눈을 뜬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018.6.3. 연중9주일

우리는 ‘예수의 부활 생명’을 간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오늘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다함께 손을 잡읍시다.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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