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an

대한성공회 송파교회의 관할사제입니다.

2020. 5.10. 부활5주일

  • by

기쁨의 시기인 부활절기에 그리스도교 근본 진리와 토대에 대한 되새김질로 초대합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우리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자라가고 있는지 되새깁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2020. 4. 26. 부활3주일

  • by

주님은 우리 인생 여정의 가장 위대한 동반자이십니다. 복음이야기는 이 ‘임마누엘’의 진실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 여정을 결코 혼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낯선 분’에게 우리의 여정에 함께 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용기’입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 마음의 집에 들어오시어 머무시기를 간청하는 용기입니다. 그 ‘낯선 분’은 살가운 친구의 모습일수도 있고, 때로는 전혀 낯선 나그네나 가난한 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마태 25:35-40).

2020. 4. 19. 부활2주일

  • by

토마는 어떻게 합니까? 그가 정말 만졌을까요? 만졌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의심하는 토마’에서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보는 토마를 그렸습니다. 가장 거룩한 순간을 가장 속되게 표현하고 말았습니다. 예술이 그만 ‘상상력’을 상실하고 무미건조한 과학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과학도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데도 말입니다. 토마는 주님의 그 위대하신 배려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2020. 4. 18. 부활 8일부 토요일

  • by

만일 여러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고 싶습니까? 어머니입니까? 부인입니까? 자녀들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성모’라고 부르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따라다녔던 열한 명의 남성 제자들에게도 먼저 발현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당신이 “일곱 마귀를 내쫓아 주신”(루가 8:1-3)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2020. 4. 17. 부활 8일부 금요일

  • by

악마의 속삭임에 속지 마십시오. 자기 내면의 비판자나 율법교사에게 속지 마십시오. 주님은 항상 어지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거나 버리시지 않고, 제자들의 경우처럼 반복해서 만나주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그 때 우리를 만나주시는 주님이 사용하시는 몇 가지 재료들이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경우는 ‘식사’(오병이어, 최후만찬)였고, 제배대오의 아들들의 경우는 ‘식사’와 ‘물고기’였으며, 베드로의 경우는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숯불’입니다. 전부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아픈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재료들입니다.

2020. 4. 16. 부활 8일부 목요일

  • by

부활절기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우들은 저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집안에 갇혀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모두가 ‘지치고 풀이 죽어’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2천 년 전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까지 오늘의 우리처럼 ‘어둠의 시간’, ‘절망의 시간’, ‘불확실한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절망의 시간’에 ‘풀이 죽어 있던’ 제자들을 향해 약속처럼 찾아오셨습니다. 그 은총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 4. 15. 부활 8일부 수요일

  • by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무색할 정도로 기쁨을 잃어버린 세상 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담하는 세상에 ‘용기’를 주도록, 절망하는 세상에 ‘희망’을 주도록 ‘부름 받고 있는 부활의 증인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은 자기 혼자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간직하고(빌립 2:5) 이미 받은 부활의 은총을 이웃에게로 흘려보냅니다.

2020. 4. 14. 부활 8일부 화요일

  • by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름’은 ‘한 존재의 영혼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따라서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한 존재를 향한 ‘인정’과 ‘존중’과 ‘사랑’과 ‘수용’을 뜻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 존재의 필요에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정’과 ‘존중’과 ‘사랑’과 ‘수용’이라는 ‘영혼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맙게도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시편》에서 찬미한 것처럼(시편 33:20-22), 우리의 그러한 필요에 가장 잘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몹시 그리운 이름을 간직한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이틀 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6주기’입니다. 그 곱고 아까운 이름들을 가슴에 간직한 어머니들을 기억하며 고요히 두 손을 모으고 《시편》 시인처럼 기도로 들어갑니다.

2020. 4. 13. 부활 8일부 월요일

  • by

이제 나이가 들어서는 굳이 손바닥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토마처럼 옆구리를 보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단지 주님이 저를 바라보는 그 다정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눈빛’은 항상 가장 강력하게 상대방의 ‘영혼’에 자신을 새겨주기 때문입니다.

2020. 4.12. 부활대축일

  • by

오늘은 인류에게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 첫날’입니다. 생명의 창조주께서 극악한 ‘죽음의 권세’를 부수시고 ‘궁극적으로 승리’하신 날입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왕께서 인류의 적인 ‘마귀’를 영원히 패배시키시고 사흘 만에 승리자로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영원한 승리자’로 무덤에서 나오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입니다. 시체를 지키려고 무덤 문을 ‘돌’로 막고, ‘봉인’까지 하여 지켰어도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를 결코 가둘 수가 없었습니다.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듯이 무덤의 돌은 약속의 날이 되자 무게 값도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