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Aidan

선한 사마리아인

2017.6.18. 연중 11주일

우리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마음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공부이기도 합니다.

2017.6.11. 성삼위일체대축일

삼위일체주일은 하느님의 존재방식과 관계방식을 마음에 새기고 더욱 사랑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대축일입니다. 한 처음, 삼위일체 하느님이 이 뒤죽박죽 혼돈스럽고 어두운 세상에 ‘말씀’하시어 창조가 일어났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사람들의 마음은, 회복과 창조(구원)를 필요로 합니다.

2017.6.4. 성령강림대축일

꽃은 돌아다니며 향기를 뿜지 않습니다. 향기를 전하는 것은 언제나 바람의 몫입니다. 꽃은 그저 제자리에서 좋은 향기를 머금은 제 모습을 피우면 그만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권능 안에 푹 잠기어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자기 삶의 자리마다에서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부

부부

모든 부부는 행복을 일구고 있습니다. 땀 흘려 서로의 모습을 순결하고 아름답게 지켜 나가다보면 행복의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그러니 열매에 연연하지 말고, 일하는 동안 밭에서 찾아낸 ‘지혜’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부부가 되십시오. 그 지혜는 ‘때’의 분별과 ‘인내’의 소중함입니다. 자녀는 이것을 ‘부모의 뒷모습’을 통해 배웁니다. 뒷모습은 숨길 수 없는 ‘속마음의 드러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이 지혜를 배운 이들만이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어가는 오늘의 가정들 속에서 푸르른 나무가 되어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걱정

걱정

걱정은 ‘잘못된 생각’, ‘불합리한 의미주기’에서 싹터난 일종의 감정 상태입니다. 정보에 대한 삭제, 왜곡, 일반화의 오류가 일어난 인지적 결과라고도 불립니다. 만일 '그 일'을 이치에 맞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대는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오류 중에서 대표적인 생각이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이고, 약하다”입니다. 그대가 상대해야 할 그 일을 거인 ‘골리앗’처럼 여기고 지배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대는 점점 걱정의 늪에 빠져듭니다. 이처럼 '자기 존재의 망각'에 기인한 인지적 오류가 모든 걱정의 뿌리입니다.

거짓 선생

거짓 선생

수많은 ‘선생’들이 자신이야 말로 그 문으로 들어가 ‘빛의 조명’을 받은 ‘스승’이라며 가르침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려왔습니다. 뿌려진 씨앗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저절로 돋아나 자라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선생의 가르침이 참 생명으로 피어날 씨앗인가를 처음부터 ‘분별’해야 할 몫을 떠맡습니다. 만일 그 씨앗이 독초로 피어날 씨앗이었다면 큰 낭패를 봅니다. 언제나 하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늘 자기 생명을 담보(擔保)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2017.5.14. 부활 5주일

우리는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분으로 믿고 따릅니다. 예수님이 진정 그런 분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감사

옛 사람들은 생(生)이라는 글자를 풀이할 때,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힘겹게 건너는 것에 비유 했습니다. 날마다 처음 맛보는 오늘이기에 누구에게나 낯설고, 사는 방법 역시 서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 하루를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의 삶은 처음 받아든 한 장의 악보와 같습니다. 하루하루는 이 악보 속의 길고 짧은 음표에 해당되지요. 어떤 음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쉽게 연주할 수 있지만, 어떤 음표는 뒤얽힌 실타래 같아 좀처럼 연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대는 어떻게 합니까?

2017.5.7. 부활 4주일/가정주일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문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생명을 바쳐 세워주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덕택에 죄를 용서받고 구원 얻은 하느님의 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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