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Aidan

부부

부부

모든 부부는 행복을 일구고 있습니다. 땀 흘려 서로의 모습을 순결하고 아름답게 지켜 나가다보면 행복의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그러니 열매에 연연하지 말고, 일하는 동안 밭에서 찾아낸 ‘지혜’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부부가 되십시오. 그 지혜는 ‘때’의 분별과 ‘인내’의 소중함입니다. 자녀는 이것을 ‘부모의 뒷모습’을 통해 배웁니다. 뒷모습은 숨길 수 없는 ‘속마음의 드러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이 지혜를 배운 이들만이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어가는 오늘의 가정들 속에서 푸르른 나무가 되어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걱정

걱정

걱정은 ‘잘못된 생각’, ‘불합리한 의미주기’에서 싹터난 일종의 감정 상태입니다. 정보에 대한 삭제, 왜곡, 일반화의 오류가 일어난 인지적 결과라고도 불립니다. 만일 '그 일'을 이치에 맞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대는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오류 중에서 대표적인 생각이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이고, 약하다”입니다. 그대가 상대해야 할 그 일을 거인 ‘골리앗’처럼 여기고 지배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대는 점점 걱정의 늪에 빠져듭니다. 이처럼 '자기 존재의 망각'에 기인한 인지적 오류가 모든 걱정의 뿌리입니다.

거짓 선생

거짓 선생

수많은 ‘선생’들이 자신이야 말로 그 문으로 들어가 ‘빛의 조명’을 받은 ‘스승’이라며 가르침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려왔습니다. 뿌려진 씨앗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저절로 돋아나 자라납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선생의 가르침이 참 생명으로 피어날 씨앗인가를 처음부터 ‘분별’해야 할 몫을 떠맡습니다. 만일 그 씨앗이 독초로 피어날 씨앗이었다면 큰 낭패를 봅니다. 언제나 하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늘 자기 생명을 담보(擔保)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2017.5.14. 부활 5주일

우리는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분으로 믿고 따릅니다. 예수님이 진정 그런 분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감사

옛 사람들은 생(生)이라는 글자를 풀이할 때,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힘겹게 건너는 것에 비유 했습니다. 날마다 처음 맛보는 오늘이기에 누구에게나 낯설고, 사는 방법 역시 서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 하루를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의 삶은 처음 받아든 한 장의 악보와 같습니다. 하루하루는 이 악보 속의 길고 짧은 음표에 해당되지요. 어떤 음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쉽게 연주할 수 있지만, 어떤 음표는 뒤얽힌 실타래 같아 좀처럼 연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대는 어떻게 합니까?

2017.5.7. 부활 4주일/가정주일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문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생명을 바쳐 세워주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덕택에 죄를 용서받고 구원 얻은 하느님의 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2017.4.30. 부활 3주일

부활하신 주님은 낙담하여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빵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참된 희망이신 당신을 알아보도록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바로잡히고, 참된 희망의 사람으로 눈뜨기를 기도합니다.

2017.4.23. 부활 2주일

주님은 흔들리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사랑의 징표인 그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도록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의심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을지라도 두려움의 문들을 열고 주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주십니다.

2017.4.16. 부활주일

나보다 더 아파하는 이들의 고통에 동참함 없이 부활도 없습니다. 진실에 대한 추구 없이 부활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조리와 구조악 속에서 고통당하는 이들과의 연대로 나아갑니다. ‘이미’ 영생의 문에 들어선 부활의 사람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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