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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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주여, 이 성수로써 나를 씻기시어 처음 세례 때의 은총을 보존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도 정갈한 ‘성수'(聖水)로 부끄러운 몸을 적셔봅니다. 홍수에 오히려 마실 물 없다던 선인들의 말씀이 스쳐갑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소음과 잡음, 헛된 정보의 홍수 속에 이 몸이 있게 될는지요. 내 영혼은 손가락 첫마디 적실 한 종지 물이면 충분합니다.

고요히 기다리시는 ‘성체등(聖體燈)’ 앞에 몸을 놓아 봅니다. 고통 하는 예수님을 붙잡아둔 침묵의 십자가로 눈길이 향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치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속을 끓이고 있는 자신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리 못난이를 사랑하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침묵에 들어갑니다. 귀가 입을 대신할 때만이 비로소 배움은 시작됩니다.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분심의 ‘파랑(波浪)’에 한마디 말씀의 꽃잎을 정성껏 띄웁니다. 깊이 들여다봅니다. 내 안에 나로 계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언제나 해답은 내 안에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이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인생은 없습니다. ‘생명’에 접속합니다. 일어섭니다. 이젠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걷기명상을 하러 오금공원으로 향합니다. 교회 앞 화분 하나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7월은 꽃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봄꽃은 지고 가을꽃은 아직 꽃대를 올리기 전입니다. ‘수국’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장마 무렵 피기 시작하는 수국은 도깨비 같습니다. 어느 해는 청 보랏빛을 보여주더니 올해 옮겨 심은 수국은 온통 흰빛으로 오묘합니다.

은행나무도, 갈참나무도, 잣나무도 제 빛깔로 빛납니다. 고맙게도 찌든 때를 벗으라고 ‘성수(聖水)’를 흠뻑 뿌려주셨습니다.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러가는 비탈길이 참 좋습니다. 나무들 사이에 서면 나무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모든 나무는 자기만의 생명의 소리를 가졌습니다. 다른 나무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도 떼보지 못했지만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을 신뢰하며 살아온 나날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 자기 모습을 실현하며 수십 년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신뢰하며 살아온 모든 나무는 아름답습니다.

내 영혼도 그러고 싶습니다. 침묵 속에 고요히 빛나는 나무들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꺼질지 모르는 생명이지만, 나만의 생명의 소리를 따라 살다가 그 소리의 주인께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찬미하올 침묵의 하느님, 귀를 열어주소서.

[사도들의 편지 2017] 오정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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