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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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걱정은 ‘잘못된 생각’, ‘불합리한 의미주기’에서 싹터난 일종의 감정 상태입니다. 정보에 대한 삭제, 왜곡, 일반화의 오류가 일어난 인지적 결과라고도 불립니다. 만일 ‘그 일’을 이치에 맞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대는 걱정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오류 중에서 대표적인 생각이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이고, 약하다”입니다. 그대가 상대해야 할 그 일을 거인 ‘골리앗’처럼 여기고 지배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대는 점점 걱정의 늪에 빠져듭니다. 이처럼 ‘자기 존재의 망각’에 기인한 인지적 오류가 모든 걱정의 뿌리입니다.

달은 언제나 자신이 달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자기 궤도를 따라 돕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들꽃도 자신이 꽃임을 잊지 않고 언제나 제 자리에서 피어납니다. 우리 역시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자신이 누구신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함께 있어 주어야할 연약한 ‘다윗’이 누구인지 결코 잊어버리실 리 없습니다. 더욱이 하느님은 ‘엄마’ 보다도 더 가까이 있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 이사 49:15

낯선 곳을 방문해 놀던 아이는 수시로 엄마의 존재를 확인해야 안심합니다. 하느님과 지구에 놀러온 그대도 가끔은 이런 유아적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대를 까맣게 잊은 건망증 환자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 때도 있습니다.

걱정은 마음에 기어들어온 일종의 해충입니다.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은 바람결에 온 것일 수 있습니다. 두 마리 세 마리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 놈들이 알까기 좋은 습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서둘러 약을 놓거나 잡지 않으면 그대의 마음은 점점 병들고, 더한 해충들이 모여드는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그대의 걱정이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속히 바로 잡으십시오.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망각하는 불신의 독버섯을 자라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 일’이 아니라 그대가 오히려 하느님과 손을 잡고 있는 ‘다윗’입니다. 그대 뒤에는 골리앗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인’이 함께 합니다. 파리 한 마리쯤이야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신뢰로 내리치십시오. 이렇게 ‘자기 자리 찾기’ 기도를 바치면서 말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이 붙잡아 주시는 사랑 받는 자녀임을 감사합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대의 마음은 정원이고, 그대의 영혼(생각)은 ‘씨앗’입니다. 걱정이 아니라 감사가 그대의 영혼을 건강하게 싹트게 하는 거름입니다. 근심이 아니라 신뢰가 그대의 영혼을 잘 자라게 하는 햇빛입니다. 염려가 아니라 기도가 그대의 영혼을 함초롬히 적시는 단비입니다. 이렇게 돌보아진 영혼은 시간이 무르익으면 반드시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돌아다니면서 피는 꽃은 없습니다. 더욱이 향기를 자랑하러 돌아다니는 꽃도 없습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향기를 머금은 꽃으로 피어날 뿐입니다. 향기를 실어 나르는 일은 언제나 바람의 몫이고, 그대는 바람과 함께 살갑게 춤출 뿐입니다. 춤사위에 반한 나비와 꿀벌들의 방문을 받은 그대는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대의 마음이 걱정을 모아두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평화가 영글어가는 하늘정원이길 축복합니다.

[사도들의 편지 2017] 오정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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