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이루어주시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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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기도를 이루어주시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유아적인 이기심의 껍질을 깰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좌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턱 끝을 치켜 올리는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고난을 겪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의 눈물을
마음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없는 분이어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울감과 무력감도 삶의 일부이자
제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침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하늘만 쳐다보며 기다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아니라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 전보다 성숙한 자신을 당신께 바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
기도를 이루어주시지 않아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곁에 있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삶을 당연하지 않은 눈으로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는 이 하루도
은총의 선물임을 알기에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사순 2주간을 지나며
오정열 애단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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