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생각, 맑은 말, 맑은 행실

대한성공회 송파교회

마음 준비를 다 하기도 전에
벌써 사순절이 다가왔습니다.
오늘도
정갈한 성수聖水를 찍어
부끄러운 몸을 적셔봅니다.
이번만큼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며,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오롯이 준비된 침묵으로
‘부활’을 맞이하겠다고,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분심의 파랑波浪에
한마디 말씀의 꽃잎을 정성껏 띄워봅니다.

제대 앞에 소담스럽게 놓인 꽃들을 봅니다.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은은한 향기로
제 존재를 알려오는 꽃들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비록 잘려진 몸으로
내님께 바쳐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향을 뿜어내고 있는 꽃들처럼,
언제 어떻게 꺼질지 모르는 생명이지만
주어진 하루를 아름답게 살다가
내님께 바쳐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두 돌아간 후
불 꺼진 성당 앞자리에
고요히 몸을 놓아 봅니다.
성당 벽에 반사된 십자가 그림자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노라면,
단순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이
십자가 위에 겹쳐집니다.

참으로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수도 없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못난 저를 사랑하신다니…
정말이지
하느님이 참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번 사순절만큼은
맑은 생각,
맑은 말,
맑은 행실의 씨앗을
부지런히 키워가고 싶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심겨진
‘생명의 씨앗’이
한 송이 ‘연꽃’으로
찬연히 피어올 날을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2018년 사순절을 몇 걸음 앞두고
오정열 애단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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