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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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추억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을 보니 나이를 속일 순 없나 봅니다. 2002년 서울대성당에서 근무할 때 일입니다. 대성당은 매일 아침 7시(금요일은 정오)에 감사성찬례가 있습니다. 주변에 덕수궁과 이름난 호텔들이 위치하다 보니 가끔 외국인들이 아침 성찬례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번은 2개월 넘게 아침 성찬례에 참여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금발에 콧수염이 멋있는 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다 성찬례 후에 간단한 대화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동료 신부님과 함께 나섰습니다. 우리가 앉은 곳은 대성당 근처에 있는 ‘콩나물 국밥집’이었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러 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성함은 ‘데이빗’, 미국에서 왔고, 어딘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별로 마음에 두진 않았습니다. 대화중에 성직자가 되기 전에 어떤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여를 택시 운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IMF 직후로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몹시 어렵던 시절입니다. 은사이신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이야말로 자신의 ‘대학’이었다고 고백하셨는데, 저에는 그 시절이 일종의 인생대학이었습니다. 어떤 삶의 애환 속에 교우들이 살아가는지, 돈 천원을 벌기 위해 어떤 고생을 하는지, 봉헌함에 그 정성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할 수밖에 없는지 생생하게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 역시 몇 푼 안되는 그 월급을 떼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바치면서 무수히 갈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은 제 이야기를 무척 흥미롭게 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다음주간이 된 어느 날, 그분이 사목실로 찾아왔습니다. 손에 든 작은 꾸러미를 건넸습니다. 펼쳐보니 액자였습니다. 내용이 좀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말씀과 더불어 옆에는 ‘콜라주’ 기법으로 택시 사진이 조각조각 붙어있었습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지난 번 제 이야기를 듣고 만든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설명은 이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그들은 결국 사람들을 낚아 하늘 집으로 인도했다.
너도 거리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택시에 태워
그들의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했다!
그 경험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었다.
너도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사람들을 낚아서
하늘 집으로 인도하는 일을
잘 해내기를 바란다.

듣고 보니 참 그럴 듯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액자를 보물 다루듯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당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이 그림을 가지고 짧은 인생 경험을 나누곤 하지요. 지난 연중3주일(1월 21일) 복음서 이야기가 예수님이 첫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 이 이야기를 나눌까 했지만, 여의치 않아 여기에 올립니다.

그 분이 언제 한국을 떠났는지 기억에 나진 않습니다. 글을 쓰다 말고 이 액자 선물을 하신 분이 정확히 뭐하시는 분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옛날 기억을 더듬어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런 분이었네요. 한국개발연구원(韓國開發硏究院, 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 부설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의 국제관계학 교수, ‘데이비드 할러란 룸스데인’(David Halloran Lumsdaine). 심지어 이 분은 『Evangelical Christianity and Democracy in Asia』(개신교와 아시아 민주주의)라는 책까지 냈군요. 지금은 미국 Oxford Center for Mission Studies의 연구 교수로 있습니다.

언젠가 꼭 한번 다시 만나고픈 분입니다. 그 분 역시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낚아 하늘 집으로 인도하고 계시겠지요.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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