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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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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52:7-10 / 시편 19:1-6 / 로마 10:12-18 / 마태 4:18-22

오늘은 사도 성 안드레아 축일입니다. 복음서마다 예수께서 첫 번째 제자를 부르시던 장면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출신지도 차이가 납니다. 그 나름의 신학적 구도를 가지고 그리한 것이니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의 편의를 위해 조금 조정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요한 1:29-40), 안드레아는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사도 요한과 함께 있다가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라는 스승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약속된 메시아’라는 일종의 관용구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안드레아의 가슴은 요동쳤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과 함께 예수를 따라갔고, 그날 예수와 함께 지냈습니다. 이것이 안드레아와 사도 요한이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의 상황입니다.

예수를 만난 후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베드로)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요한 1:41).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교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첫 만남(아직 제자가 되기 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에 안드레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여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요한 6:8-9). 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리스 사람’을 돕기 위해 필립보와 함께 알렸습니다(요한 12:22-26). 그렇게 해서 그 유명한 ‘밀알’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처럼 안드레아는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믿음을 전수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깊은 믿음을 일깨우는 일에 도구가 된 사람의 대표입니다. 오늘 서신으로 낭독한 《로마서》도 안드레아와 같은 복음 전도자들을 칭송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로마 10:15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지방에까지 선교했습니다. 순교한 곳과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네로 황제 박해 시절 X형태의 십자가에 달려 그리스 지역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안드레아 성인을 나타내는 성화나 성상에는 X형태의 십자가가 함께 나옵니다. 참고로 성공회도 성물(십자가, 주님의 성상, 성화, 성인의 성상, 성화, 묵주, 기타 신앙 증진을 위한 물건들) 축복을 합니다.

이제 오늘 복음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그 첫 만남 후 예수께서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장면입니다. 그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였습니다. 먼저 예수께서는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를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첫 만남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따라오라고 부르시는 장면이 이상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이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자신들이 따라야 할 유일한 가치가 있는 분으로 ‘곧’ 행동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예수께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따라나선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을까요? 무엇이 그들이 살기 위해 의지해 온 지금까지의 생계 수단마저 버리고 미래를 향해 떠나게 했던 것일까요? 그날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난 체험은 무엇이었을까요?

분명 예수께서는 어떤 식으로 당신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 것이지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날, 그 부르심 속에서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해방감과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완전한 신뢰를 보이며, 그들 삶에서 유일한 가치가 있는 분으로 즉각적으로 따라갔습니다.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일어난 체험은 다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에게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즉각적으로 생계 수단과 가족까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4명의 제자는 그들이 의지해 온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을 종속시켜 온 ‘그물과 배’라고 하는 물질적인 삶에 대해 즉각적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들을 지배해 온 ‘아버지’라는 전통적 가치에 대해 즉각적으로 도전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그들이 옛 생활로 돌아가려 한 것을 압니다. 그런 과실에도 불구하고 처음 부르심을 받던 날 그들이 보여 준 행동은 예수님을 따라나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큽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여정에 나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나는 예수를 어떤 분으로 만났습니까? 어째서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릅니까? 예수를 따라나선 나도 그들처럼 해방감과 자유를 맛보았습니까?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도 즉각적으로 반응합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을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만을 앞에 두고 다른 것은 자기 뒤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한 우물가의 여인이 그랬고(요한 4:28),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시각 장애인 바르티매오가 그랬으며(마르 10:50), 사도들이 그랬습니다(루가 5:27-28).

사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름에 있어서 버려야 할 그것들에 대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드레아가 베드로에게 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에게 감사 문자라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드레아처럼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하고, 사랑의 삶을 통해 기쁜 소식인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전하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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