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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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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1-5 / 시편 122 / 마태 8:5-12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교우가 선물한 양초 4개를 준비하고 축복한 후 불을 댕깁니다. 피어나기 시작한 빛을 바라보며 주님과 대화에 들어갑니다.

주님, 저는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복음 이야기에는 하인을 사랑한 백인대장이 등장합니다. 그의 하인은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중풍병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마비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 머리의 생각과 신체 반응이 불일치 하는 상태입니다. 그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하인을 위해 처방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희망의 소식, ‘예수’를 듣습니다. 그는 하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사정하는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하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배웁니다. 그가 겸손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임을 배웁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임을 배웁니다. 그는 유대인도 아니면서 예수님께 큰 믿음을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권위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사실, 그는 군인이기에 위계질서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부하들이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이 지시하면 하인이 그대로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삶의 경험을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입했습니다. 방문이나 접촉 없이 단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명령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감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말 어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이스라엘이 어떤 땅입니까? ‘믿음’으로 하느님을 감동하게 한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사는 곳입니다. 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일어나고 스러져 간 거룩한 땅입니다. 믿음이라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만한 선민들이 살던 약속의 땅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감동하게 한 ‘믿음’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그것도 그들이 원수로 여긴 ‘군인의 차지’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 그치고, 폭력 없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메시아 시대를 내다봅니다. 시편도 평화가 찾아든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노래합니다. 예언서와 시편의 노래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런 시대는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이야기에 따르면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주님을 신뢰하며 가장 놀라운 믿음을 보여준 사람은 선민인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수와 죄인으로 여기며 멸시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주님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한 사람은 믿음의 후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지옥의 불쏘시개감 정도로 여기던 전쟁과 폭력에 익숙한 ‘군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비전이 이루어진 축복의 말씀과 함께 경고하십니다.

잘 들어라.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 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거룩한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교회는 전례독서를 통해 기다리는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하인의 병을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던 백인대장의 절실한 사랑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동이 있는지 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주님을 향한 백인대장의 믿음을 통해 기다리는 우리의 믿음을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평화의 시대를 가져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향한 희망의 촛불이 댕기어져 있는지 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복음 이야기 해설을 시작하면서, 중풍병은 머리의 생각과 신체 반응이 불일치 하는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입술의 고백과 행동이 불일치 하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우리가 중풍병을 앓고 있는 셈입니다. 이 대림절 그런 우리가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에 간직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오시는 주님을 감동하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제 안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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