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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4일 / 연중 34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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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5:1-17, 23-28 / 시편 98 / 루가 21:12-19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존재의 목적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소유이고, 우리의 존재 목적과 사명이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임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시편 98편은 모든 피조물을 향해 새 노래로 승리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임금)이신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공정하게 통치하시러 오신 임금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금주간 시편 대신 낭송하도록 배정된 ‘창조 송가’(다니 3:57-90)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향해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9편도 피조물들이 자신을 지으신 하느님의 영광과 솜씨를 선포한다고 노래합니다. 시편에 따르면 피조물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압니다.

1독서 《다니엘》에는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빌론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제국이 태평성대를 누릴 때, 그는 만조백관들을 불러 멋진 잔치를 벌였습니다. 왕은 자신이 그곳에 모인 권력가들뿐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라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깊이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누가 자신을 그 자리에 앉히어 그런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인지 무지했습니다.

잔치 중에 그들은 그만 ‘선’(線)을 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하여 온 금잔, 은잔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하였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들의 만용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잊어버릴 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피조물인 주제에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넘고야 맙니다.

창조주 하느님,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분은 이것을 가만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손가락을 보내시어 벽에 글자를 쓰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인생들, 자기 존재의 목적과 사명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경고였습니다. 왕은 글의 뜻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것이 경고임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뭔가 잘못이 있음을 가장 먼저 깨달았습니다.

새파랗게 놀란 그에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보내시어 뜻을 알려주십니다. 다시 말해 인간 존재의 목적과 사명을 알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복음 이야기가 하늘과 땅과 자기 인생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고 있는 다니엘에게서 이미 성취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지극히 높으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증언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경험한 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고 있는 우리에게서도 진실이라는 것이 교회의 증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생이 살아온 날뿐 아니라 살아갈 날도 아십니다. 중요한 일은 우리가 그 진실을 알고,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편 90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 시편 90:12

하느님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당신의 ‘저울’에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어떤가요? 우리는 그 저울질에서 모자란 삶인가요? 아니면 넘치는 삶인가요? 우리는 날마다 감사하면서,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 목적과 사명인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어찌되든지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와 끝까지 동행하십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주님이 마지막 오시는 그날, ‘생명’을 얻을 ‘사랑의 삶’을 살고 있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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