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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2일 / 연중 34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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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1:1-6, 8-20 / 시편 150 / 루가 21:1-4

그날, 예루살렘이 과월절 축제 준비로 인산인해로 붐비던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경내 ‘여인의 뜰’에 계셨습니다. 그곳에 있던 ‘성전보물 창고’ 벽에는 13개의 ‘헌금궤’가 있었습니다. 깔대기처럼 입구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관이 좁아져서 통속에 떨어지는 구조였습니다. 동전만 있던 시절이니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그 액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 보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른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때, ‘채색’(彩色) 옷을 입은 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여럿이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떠들썩하게 줄을 지어 ‘돈’을 넣기 시작합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통 속에서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이목’(耳目)이 집중됩니다. 그들은 아무런 고통 없이 단지 ‘한두 방울의 땀’을 그들 몸에서 짜내고 있었습니다. 그 땀이 떨어진다 해도 그들의 재물이 타격을 입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사랑 없는, 희망 없는, 감사 없는, 관대함 없는, 희생 없는 그들의 행위를 보고 계셨습니다. 진정한 자기 봉헌 없이 의무감과 자기과시와 자기만족에 빛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때, 초라한 행색의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서는 그 사람을 가난한 과부라고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의존 속에 살아온 그의 삶, 즉 가족과 형제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의 차림새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르게 보셨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의존’ 속에 살아온 그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깊이 보셨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어볼 겨를이 없었으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관대함을 보셨습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오직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행복한 그의 감사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나 고통마저도 넘어서서 자기 전부를 바치는 그의 ‘희망’과 ‘희생의 피’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 사랑, 희망, 감사, 관대함, 희생에 탄복하십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의 본으로 그를 세우셨습니다. 봉헌에 담긴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그 봉헌의 가치를 알아주셨습니다. 사실, 과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것이 복음서(마르코, 루가복음) 기자가 이 이야기를 십자가 수난 직전에 배치한 이유입니다.

오늘, 주님을 향한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작은 동전 두 닢을 지닌 가난한 과부보다야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례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진실입니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임이 당신의 손끝에서 드러나고 있습니까? 주님과 함께 있기보다 재물과 함께 있기를 더 원하지 않습니까? 주님으로 인해 풍요로워지기보다 재물로 풍요로워지기를 더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돈을 모으고 재물을 쌓아서 무엇 하시려고 합니까?

가진 것 전부를 바친 그 위대한 봉헌이 있던 날 밤, 과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상상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날도 ‘과부’로 대변되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주님은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과 어떻게 연대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될 것임을 ‘최후심판’에서 교훈하십니다(마태 25:31-46). 그 모든 ‘연대 행위’는 주님이 그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봉헌입니다.

주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을 이끌어가는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감사를, 관대함을, 희생을 보십니다. 보잘것없는 우리와 연대하시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주님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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