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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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대는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육체, 감정, 영혼을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삶의 터전인 일상과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성서는 질문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을 제공합니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 창세 1:26,27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 출애 3:5

자신의 몸(육체, 감정, 영혼)을, 발 딛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일상을,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신성’(神聖)하게 돌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삶의 진실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불과 한 세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생활은 더욱 편리해졌고,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접촉은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그러나 병원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대형화하고, 의료산업은 호황을 누립니다. 경쟁적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결코 치유(治癒)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잉진료와 제약회사의 음모 때문일까요?

가상의 공간이 제공하는 가짜 경험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외로움을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각종 병으로, 마음의 외로움과 우울로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예수 스승을 따라서 마음공부를 수행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로서 깨우친 바는 이렇습니다. 치유는 과학기술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는 자기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치유는 자신의 몸(육체, 감정, 영혼)을, 일상을, 자연을 이들보다 더 큰 차원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볼 때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모든 치유는 그대 자신을 신성(神聖)하게 돌보는데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대여,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기를 빕니다. 그대의 육체를, 감정을, 영혼을 신성의 품안에서 돌보십시오. 다른 이들을 돕고 싶다면 신성의 눈 아래서 먼저 그대 자신을 돌보십시오. 다른 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자신을 돌보는 일을 팽개치는 어리석음을 끊었으면 합니다. 그대의 몸은 그런 무시를 결코 견딜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성은 그런 무시를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 융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신은 질병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

이런 생각의 편린(片鱗)들을 공감하는 이들과 좀 더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그대가 그런 이웃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대가 먼저 이 그네에 앉아 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성과 연결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정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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