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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18. 사순 26일(목요일)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주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풍성한 은혜로 변화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출애 32:7-14
  • 성시 – 시편 106:19-23
  • 복음서 – 요한 5:31-47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예수께서 대사제 가파야의 집에서 재판받으시던 그 불의한 날 말입니다. 의회로부터 누명과 모독과 욕설을 받고 사형에 넘겨지던 그 거짓 증거의 날 말입니다. ‘헤로데’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으시던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빌라도의 재판정에 묵묵히 서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등에는 채찍으로 맞은 상처로 피가 엉겨 붙어 있고, 머리에는 왕이라는 표시로 가시관을 쓰셨던 그 날 말입니다. 손바닥 뒤집듯 지난날의 환호성을 저주로 바꾼 무리, 악을 쓰는 무리로부터 십자가형을 요구받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사랑이 미움으로 보답 되던 그 모순의 날 말입니다. 환호성이 저주로 바뀐 그 배반의 날 말입니다.

비웃음과 조롱, 욕설과 미움, 저주와 배반이 휘몰아치던 그 재판정, 인간이 하느님을 심판하던 그 날, 피조물이 창조주를 심판하던 그 치욕스럽던 날,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변호’해 보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살려는 모든 의지를 내려놓은 것처럼 묵묵히 서 계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반면에 오늘 복음 이야기는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최선을 다해 자신에 대해 ‘변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증인’과 ‘증거’까지 동원해 자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증언’하십니다. 그 ‘증인’은 ‘모세’, ‘세례자 요한’, ‘하늘 아버지’입니다. 그 ‘증거’는 당신이 하시는 ‘생명의 일’과 ‘성서’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이 ‘메시아’(그리스도)로서 하느님 아버지의 신성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해 가시는 중임을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그들을 설득해내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명확한 증인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진실’을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해 가시는 거룩한 구원의 계획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 명백한 증인과 증거들에도 그들은 그렇게 ‘불신앙으로’ 반응한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요한 5:42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꿰뚫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 ‘삶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똑똑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워봅니다. 우리 ‘마음’에는 ‘사랑’이 있습니까? 무엇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증언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책망’(불편한 진실)이 우리를 향하지 않도록 영혼을 돌보는 하루여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신앙의 늪에 빠집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우리를 결코, 저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의심의 병과 영적 어둠 속에서 헤맬 때 예수께서는 ‘사랑의 영’인 ‘성령을 통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불신앙 하던 그들을 설득해내고자 했던 그 열정보다 더 열정적으로 영적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당신의 주님 되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인류’를 상징하는 베짜타 못 가의 수많은 병자처럼, 우리 영혼이 너무 깊은 병 가운데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깨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영혼을 잘 돌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순 여정 동안 바치는 우리의 자선과 단식과 기도는 분명히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해주시려 성령을 통해 찾아오신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삶 전체로 사랑이신 아버지를 가리켜 보이신 ‘외아들’이십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똑똑히 보여주시려 찾아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 상황 속에 있든지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생명의 일’을 하십니다. 그 ‘생명의 일’ 중에 으뜸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는 일입니다.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한 ‘영적 발돋음’이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영혼이 의심의 병과 영적 기근에 ‘잠시’ 빠져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임을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8). 우리는 좌충우돌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 삶에 행하고 계신 ‘생명의 일’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찾아오십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우리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나누고자 하시는 사랑의 일들을 볼 수 있도록 귀와 눈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결국은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해주시는 ‘착한 목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라면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 친밀한 친교 속에 있게 하는 일이라면, 우리가 사랑받는 자녀임을 알게 하는 일이라면 결코, 지겨워하지 않으시고 반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 주님이 참 좋습니다.

고요히 기도로 들어갑니다.

주님, 저를 위해 말씀하시고 저를 위해 침묵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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