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2021 3.13. 사순 22일(토요일)

본기도

우리의 구원이신 하느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종의 굴레를 벗기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죄악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호세 5:15-6:6
  • 성시 – 시편 51:1-2, 16-19
  • 복음서 – 루가 18:9-14

복음 이야기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기도 수행과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사순절 여정에 어울리는 주제입니다. 비유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들을 귀가 열린 복 있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는 어땠습니까? 그는 이스라엘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인의 뜰’로 들어가서 두 손을 쳐들고 보란 듯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 루가 18:11-12

그의 기도는 ‘오만’(자기 옳음)과 다른 사람에 대한 ‘경멸’과 ‘자화자찬’(자아도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만한(자기 의에 빠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싸잡아 ‘불의한’(못된) 사람들로 ‘판단’합니다. 특히 자신과 세리를 비교합니다.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살아 온 자신을 내세우며 ‘의인’이라 ‘자화자찬’합니다.

그는 자신을 의인이라 여겼기에 하느님께 요청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빚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셈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께 자신같이 의로운 바리사이파 사람을 이 땅에 두신 일을 감사하게 여기시라 알려드립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의 기도는, 정확히 말하면 오만한(자기 의에 빠진) 그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놈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어땠습니까? 그는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이스라엘인의 뜰’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찍이’ 섭니다. 그가 세리임을 다른 사람들이 알 리도 없지만, 그는 그래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 루가 18:13b

그는 자신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스스로를 ‘식별’(판단)했습니다. 그 식별 속에서 그는 자신을 ‘죄인’(그리스어 원문에도 ‘죄 많은’이 아니라 ‘죄인’입니다)으로 ‘직면’했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직면했기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1독서 《호세아》 예언자처럼 ‘애타게’ 주님을 찾으며 ‘자비를 희망’했습니다(호세 5:15). 그는 《시편》의 시인처럼 ‘죄를 고하며, 자신의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제물로 주님께 바치며 ‘자비를 희망’했습니다(시편 51:1-2,17-18). 이처럼 그의 기도는 회개였습니다. 용서를 간청하며 현재의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정확히 말하면 남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겸손한 마음을 간직한’ 현재의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째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자기네만 옳다고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훈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사람이 당대에 ‘의인’이라 자부하던 바리사이파 사람입니다. 그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사람의 표본으로 등장한 사람이 ‘세리’입니다.

우리는 비유를 통해 무엇을 성찰합니까? 어째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다른 결과가 있었습니까? 지금 우리 기도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갑니까?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께 은혜로 받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나불댔습니다. 대단한 ‘교만’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근본이고, 삶의 진실입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의 근본과 삶의 진실에 실패했습니다. ‘세리’는 ‘겸손’했습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느님께 빚지고 있음을 철저히 인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하느님 손에 달려 있음을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기도 수행과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사순절 여정의 절반 고개를 넘어섰습니다. ‘십자가’는 ‘겸손의 왕’이신 분께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불편한 진실’을 ‘정직하게 직면’해 갑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해 갑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자비를 간청하며 나아오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납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나 ‘하느님의 얼굴 앞’임을 더욱 깊이 깨닫습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나 평가나 손가락질이 아니라 이웃을 형제와 자매로 발견해 갑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얼굴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빛’을 선물 받습니다.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돕는 일을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심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따르는 기도 수행을 통해 우리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의 기도는 하늘을 뚫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힘이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아드님을 두신 하느님은 겸손한 사람의 기도에 가장 약하십니다. ‘겸손’은 오만으로 병든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하는 ‘약’입니다. ‘겸손’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비와 평화 속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꾸준한 기도 수행을 통해 하느님께서 인정하시고 높여주실 만한 그런 겸손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겸손의 왕이신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