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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9. 사순18일(화요일)

본기도

우리의 구원이신 하느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종의 굴레를 벗기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죄악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다니 3:25, 34-43
  • 성시 – 시편 25:3-10
  • 복음서 – 마태 18:21-35

우리는 자비하신 하느님께 진정으로 ‘용서’를 간청하며 성찬례를 시작합니다. 사제로부터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죄의 선포’를 들으며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그 용서의 은총을 기억하며 이웃을 대합니까? 용서는 하느님과 우리, 우리와 이웃을 살아있는 관계로 연결하는 튼튼한 고리입니다.

복음 이야기는 ‘용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무’를 가르쳐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누구나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용서’라는 말을 참 좋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나 용서받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용서할 일이 생기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정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에, 이 사회에, 우리의 미래에 엄청난 유익을 주는 일이 ‘용서’입니다.

베드로는 마음에 자기 나름의 ‘용서 할당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총량은 ‘일곱 번’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관대하다고 여겨서 질문했습니다. 그의 질문을 들은 예수께서는 용서를 ‘하느님과 연결’합니다. 그에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일을 먼저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한계 없는 용서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은 아무에게도 그가 용서받을 수 있는 ‘할당량’을 책정해 놓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이 하느님께 용서받아야 할 기회가 단지 ‘일곱 번’ 뿐일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계 없는 용서’,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관계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할 때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그 무한한 용서 안에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예수께서 초대하신 무한한 용서의 기준으로 이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1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가 나왔습니다.

사순절 여정 속에 있습니다. 곧 봄꽃소식이 들리겠지요. 우리는 자신을 ‘갱신’하라는 거룩한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과 서로를 더 깊이 용서하라는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용서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기 갱신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그 용서의 삶이 하느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합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날마다 <주의기도>로 고백하는 ‘용서’를 다시 읊조려봅니다. 우리는 무자비한 종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노와 증오라는 무거운 바위를 마음에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영혼을 시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중 누구도 용서받을 일이 없는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이웃을 자비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제자의 삶에서 아직 멀리 있는 셈입니다.

물론 ‘용서’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행동’을 포함합니다. 용서를 청하는 이의 진정한 회개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것 없이 말만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용서하라고 한편에게 강요하는 일은 폭력입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청하는 ‘용기 있는 행동’만큼이나 ‘용기 있게 용서하는 행동’도 절대적입니다. 언제나 용서는 당사자 간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고, 당사자 간의 용기 있는 화해가 있을 때 완성됩니다.

마음에 있는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을 용기를 주님께서 선물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기억의 감옥 속에 붙잡아두고 있는 ‘과거의 그 사람’을 해방할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벌해 온 일을 이제 내려놓습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성전’인 자신을 ‘악마의 집’으로 만들어 온 일을 이제는 내려놓습니다. 한 번의 용서는 지옥으로 기울어진 내 삶의 저울추를 한 눈금 천국으로 가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를 통해 풀려나는 죄수는 항상 우리 자신입니다. 용서를 통해 시들은 영혼은 다시 생기를 얻습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자신과 이웃 안에 ‘맑은 기운’으로 작용하게 하십시오. 용서는 고착되고 끊어진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너도나도 다시 웃음꽃이 됩니다. 하느님도 웃음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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