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6. 사순16일(토요일)

  • by

본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주시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미가 7:14-15,18-20
  • 시편 – 103:1-5,9-12
  • 복음서 – 루가 15:1-3,11하-32

복음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겪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의 배경과 묵상은 여기를 보십시오.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있는데 어머니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일은 곁가지로 많이 나간 격입니다. 두드러진 세 인물에 집중해 보십시오. 분명 작은아들과 큰아들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누가 더 나다운 모습입니까? 아마도 우리는 큰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런 성찰을 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예수께서 발설하신 비유입니다(루가 15:1-3). 우리가 예수님의 행동에 드러난 것처럼 과연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먼저 작은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가장 모욕적인 행동을 한 인물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데도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했습니다. 기다릴 수 없으니 ‘빨리 돌아가시라’라고 아버지에게 말한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어째서 아버지는 거절하지 않았을까요?

아버지 집을 떠난 작은아들의 결과는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부도덕함으로 삶을 허비한 후에야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늘어놓을 장황한 연설을 준비합니다. ‘아들’이 아니라 ‘품꾼’이어도 좋다고 말씀드릴 참입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도 버릴 참입니다. 돌아가는 자신에게 가해질 모욕과 조롱도 기꺼이 감내할 참입니다. 그는 거기를 떠나 두려움 속에서 아버지께(주인)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것이 그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그런 회개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연민 가득한 아버지는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준비해 온 회개의 말조차 무시했습니다. 대신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죽었다 살아난 아들, 잃었다 찾은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한 자비’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작은아들처럼 아버지 집에서 멀어지는 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삶을 지배하는 일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누리는 기쁨보다 세상 재미가 더 좋을 것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행복이었습니까?

삶의 신비는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삶을 지배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합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고리’로 존재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주도적인 삶이 가져다줄 행복을 꿈꿨으나 결과적으로 비참함을 맛본 작은아들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멀어진 우리도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고통당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한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아버지 집입니다.

어떤 죄악을 저질렀든지 간에 진정한 회개 속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선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비와 용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는 뉘우치는 우리 마음이 안쓰러워 그냥 두고 보지 못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돌아가면 우리가 저지른 그 많은 죄악을 아버지께서는 결코, 헤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두운 과거에 더는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버지께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아버지께로 어서 돌아오십시오. 사순절은 오늘 회개하고 부활의 미래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큰아들은 어떻습니까? 그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를 통해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성찰합니다. 큰아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살았습니다. 자신을 아버지의 충실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용서’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 속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용납하시는 형제자매를 거절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용서와 화해와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반대하여 마음을 닫는다면 우리는 당시 종교엘리트들처럼 진짜 죄인입니다. 사순절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길 위에 자신을 두는 여정입니다.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 자신을 아버지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어떤 일을 했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비의 아버지입니다. 하느님 말고 세상 어디에 그런 아버지가 있을까요? 어쩌면 자식에게 쩔쩔매는 그 모습은 우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버지 집을 떠나 하느님 자녀라는 신분에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들로 자신을 비참함으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명령을 지키며 아버지 집에 살고 있지만 정작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어서 아버지께 돌아오는 사순절, 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준비를 하는 사순절이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지금 여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