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5. 사순 15일(금요일)

  • by

본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주시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창세 37:3-4,12-13,18-28
  • 시편 – 105:16-22
  • 복음서 – 마태 21:33-43,45-46

오늘 <전례독서>는 우리가 인생길에서 겪는 시련과 고난에 대해 다른 눈을 갖게 해 줍니다.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시련은 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삶은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구원 섭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그런 믿음을 선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로, 그리고 십자가의 삶으로 이 진실을 증명해주셨습니다.

복음 이야기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곧 다가올 ‘자신의 비극적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비유의 속뜻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어떤 지주) 이스라엘(포도원)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지도자들(소작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도조)하기를 요구하시며 거듭해서 예언자(종)를 파견하십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를 배척하고 박해했습니다. 마침내 아들(예수)까지 보냈지만 그들은 아들까지 죽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을 묵과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행실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고요히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비극적 죽음’을 예상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 수난이나 죽음이 아니라 ‘다른 구원의 길’도 얼마든지 있으셨을 텐데 어째서 굳이 그 길이어야 했습니까? 대답은 예수님이 비유 끝에 하신 말씀에 등장합니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 마태 21:42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편 118:22)라는 말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118편>은 ‘과월절 축제’에 부르는 찬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오늘 1독서 《창세기》에서 들었듯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는 찬미입니다.

예수님은 이 <118편>을 인용하시어 하느님의 구원이 자신들은 구원받았다고 안심하던 대사제(성전을 지키는 자들)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갈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들려주십니다.

실제로 1독서 《창세기》와 <시편 105편>의 중심인물인 ‘요셉’이 그 증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버려진 돌처럼’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끝 모를 시련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시련은 끝이 있었습니다. 그는 민족을 구원하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일도 이 <118편>의 성취여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의 ‘비극적 죽음’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구원의 길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는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이루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구원의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현재 통과하고 있는 ‘시련’을 다른 눈으로 보는 믿음을 키웠습니까? 하느님의 섭리로 볼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의 눈을 떴습니까? 그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요셉이 되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요셉은 시련이 희망으로 이끄는 길이라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5:4).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어찌 보면 인생은 소작인과 같습니다. 지주는 소작인들에게 포도 농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지주가 떠나기 전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지주는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통째로 맡기고 멀리 떠났습니다. 포도 철이 되자 주인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몫을 요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내시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성찬례와 매일의 기도는 이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인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제공하신 선물들로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시편에서 노래했듯이 요셉은 “나라 일을 맡아 신하들을 교육하고 원로들에게 지혜”를 가르쳤습니다(시편 105:21-22).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인생의 의미 있는 선물들을 함께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받은(맡은) 소중한 것 중에 특별히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의 선물로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습니까? 믿음은 시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믿음의 선물로 자녀들을 교육하고 양육합시다. 주님을 모르는 이들과 이 믿음의 선물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믿음을 주신 하느님께 도조를 잘 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