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3. 사순 13일(수요일)

본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주시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예레 18:18-20
  • 시편 – 31:4-5,14-18
  • 복음서 – 마태 20:17-28

복음 이야기는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세 번째 수난 예고’이고, 후반부는 ‘섬김의 제자도’입니다. 다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같은 말씀을 하시는 중입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인 전반부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가고 있는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똑똑히 말씀하십니다. 체포와 수난,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 수난 예고, 그것도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 예고를 제자들이 알아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길 끝에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일에 대한 영광스러운 보상 말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정치적 메시아’가 되시면, 한 자리씩 차지할 부푼 ‘기대’였습니다. 그들은 여태껏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늘나라’(하느님 나라)를 단지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몰이해’(沒理解)입니다.

사실, 우리는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를 원합니다. 고난과 희생보다는 편안함과 섬김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이런 우리와 달랐습니다.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겸손과 섬김입니다. 종국에는 고난과 희생으로 끝납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려면, 우리는 잘 성찰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스승 예수처럼 겪어야 할 많은 고난과 감내해야 할 희생도 있다는 점을 똑똑히 새겨두어야 합니다.

후반부는 ‘섬김의 제자도’입니다. 제배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습니다. 그들은 어머니를 특사로 삼아 자신들의 욕망을 예수께 아뢰었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으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 역시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알아듣지 못한 속물임을 증명합니다.

예수께서는 분노하는 제자들 모두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때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이 걷는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밝히십니다. 그 길은 섬기고 바치는 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이들에게 요청되는 삶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겸손’과 ‘섬김’입니다. 우리는 높아지기 위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목받기 위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존경받으려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런 것에 목마르거나 굶주린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를 차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는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종국에는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누군가 알아봐 달라고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의 진정한 제자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겸손하게 섬깁니다. 어쩌면 예수의 진정한 제자는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더 좋아할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삶은 세상의 길,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부활이 있습니다. 거기에 영광이 있습니다.

주님, 진정한 제자의 길 위에 제가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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