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4. 사순 7일(춘계재,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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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한 섭리로 주님의 교회에 여러가지 성직을 세우셨나이다. 겸손히 비오니,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부르신 주교와 사제와 부제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진실하고 경건한 생활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민수 11:16-17,24-29
  • 시편 – 99 또는 27:1-9
  • 2독서 – 1고린 3:5-11
  • 복음서 – 요한 4:31-38

성공회는 ‘교회력’을 지킵니다. 교회력을 따라 성당에서는 365일 날마다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고 경축하는 ‘감사성찬례’가 봉헌됩니다. 이렇게 1년 단위로 그리스도인의 시간을 설정하여 신앙 여정을 걷는 성공회는 ‘사계재일’(The Ember Days, 四季齋日)을 지킵니다.

‘사계재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뜻하는 ‘사계’(四季)와 삼가고 깨끗이 한다는 뜻의 ‘재’(齋)가 합쳐진 말입니다. 주의할 점은 ‘제’(祭)가 아니라 ‘재’(齋)입니다. ‘제’(祭)는 ‘조상’에 대한 추모로 격식을 갖추어 드리는 ‘제사’(祭事)를 가리킬 때 쓰는 글자입니다. 발음은 같지만 ‘재’(齋)는 ‘목욕재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제사(예배)에 임하는 이의 몸과 마음의 태도’에 초점이 맞추어진 글자입니다. 제사의 격식이나 상에 올리는 ‘음식’이 아니라 ‘예배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자신의 ‘태도’에 중점을 두는 글자를 씁니다.

따라서 ‘사계재일’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1년에 4차례 특별한 날들을 정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과 언행’을 성찰하여 ‘참회하는 날들’이라는 뜻입니다. 지극한 ‘정성’(새로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하는 날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맑게 하는 ‘정화의 날들’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며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엄숙한 ‘기도의 날들’이 ‘사계재일’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이 3-4세경부터 지켜온 ‘사계재일’은 교회력에 고정입니다. 처음 맞이하는 ‘사계재일’은 교회력의 시작인 ‘대림절기’에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12월 13일은 ‘성 루시아’ 축일인데, 그 축일 후 주간에 오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동계재’(冬季齋)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사계재일은 사순 1주일 후에 오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입니다. 이 날들을 ‘춘계재’(春季齋)라고 합니다. 세 번째 사계재일은 ‘성령강림주일’ 후에 오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입니다. 이 날들을 ‘하계재’(夏季齋)라고 합니다. 네 번째 사계재일은 ‘성 십자가의 날’(9월 14일) 후에 오는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입니다. 이 날들을 ‘추계재’(秋季齋)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주간의 3일을 특별히 정하여 지키기에 ‘사계재주간’(The Ember week)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째서 다른 날이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로 ‘사계재일’이 고정일까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주간’에서 유래합니다. ‘성주간 수요일’은 예수께서 ‘가리옷 사람 유다’로부터 배반당하신 날입니다(루가 22:3-6). ‘성주간 금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신 날입니다. ‘성주간 토요일’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묻히신 날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성취를 향해 가는 여정이기에 감사한 날들이면서도 모두가 애통해야 할 참담한 날입니다. 다만 잡히시던 날 밤인 ‘성주간 목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자신의 몸을 ‘성체성사’로 세워 구원의 신비를 나타내셨기에 제외합니다.

<성공회기도서>는 ‘대축일’(大祝日)과 ‘재일’(齋日)을 교회력의 근간이 되는 절기로 규정합니다. 따라서 모든 축일과 주일에 우선하여 지킵니다. ‘대축일’(大祝日)은 7개가 있습니다. 성탄일, 공현일, 부활주일, 승천일, 성령강림주일, 성 삼위일체주일, 모든 성인의 날입니다. ‘재일’(齋日)은 ‘대(大)재일’과 ‘소(小)재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지키는 사순절기의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은 ‘대재일’(大齋日)이며, 사순절기 중 주간 40일은 ‘소재일’(小齋日)입니다. 부활절기와 성탄절기를 제외한 ‘모든 금요일’과 ‘사계재일’은 ‘소재일’입니다.

‘대재일’(大齋日)과 ‘소재일’(小齋日)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대재일’은 오전 ‘금식’(단식)을 합니다. 그래서 단식재(斷食齋)라고도 합니다. ‘소재일’은 육식을 삼가고 기도와 극기를 실천합니다. 그래서 금육재(禁肉齋)라고도 합니다. 특히 ‘단식’(금식) 전통은 <구약성경>에도 자주 나옵니다(판관 20:26; 1사무 7:6; 열왕상 21:12; 시편 35:13; 이사 58:1-14). 이스라엘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호소하며 전례적으로 ‘단식’을 지켜온 전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는 그 비극을 상기하려고 해마다 오월이면 ‘단식일’을 정해놓고 전례적으로 지켜오기까지 했습니다(즈가 7:3,5; 8:19).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번 ‘단식’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를 갖는 ‘사계재주간’에 교회는 ‘성소’를 위하여 기도하며 성찬례를 봉헌할 것을 특별히 요청합니다. 수요일은 성직자, 금요일은 성직후보자와 수도자, 토요일은 모든 신자의 성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 기도 요청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존재 이유, 즉 교회의 사명과 선교, 평화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사회적 책무와 주님의 거룩한 명령을 강조합니다.

오늘은 춘계재 수요일이기에 성직자의 성소와 관련한 <전례독서> 배정입니다. 굳이 본문 풀이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날의 취지를 이해하셨다면 복음 전도의 일꾼으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직자를 기억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대재일’(大齋日)처럼 오전 ‘금식’은 아니더라도 대한성공회 모든 성직자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곁에서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함께 사목을 감당하는 ‘성당 성직자들’을 기억하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포함하여 그들은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한 주님의 종들입니다. 성직자들은 여러분이 바치는 날마다의 기도가 꼭 필요한 종들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힘을 얻어야 부르심을 받은 이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제는 신자들의 기도 이상으로 성장하거나 성숙할 수 없습니다. 기도 안에서 사제들의 성소, 즉 거룩한 길을 의탁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 오늘만은 이 죄인을 위하여 눈물과 단식으로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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