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3. 사순 6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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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십 일을 금식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극기의 은총을 내리시어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55:10-11
  • 시편 – 34:4-6,21-22
  • 복음서 – 마태 6:7-15

복음 이야기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은 ‘규칙적으로 기도 수행’을 하는 편입니까? <성공회 기도서>는 아침, 낮, 저녁, 밤 이렇게 하루 4번의 기도 수행을 안내합니다. 정말 ‘하루’라도 이대로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규칙적인 기도 수행(기도생활)이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저는 규칙적인 기도 수행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더 다정하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대다수 신자의 경험입니다. 만일, 주님과 친밀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우리 <기도서>가 안내하는 데로 아침, 낮, 저녁, 밤 이렇게 하루 4차례 기도 수행을 하십시오. 아마 머잖아 주님과 훨씬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 마태 6:8b

이것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듣는 일’입니다. 왜 들어야 합니까? 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내일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본질은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께 먼저 ‘듣는 일’입니다. ‘한 말씀’ 하시기를 ‘침묵’ 속에서 굳은 ‘신뢰’를 가지고 ‘겸손히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를 오해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아버지께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아버지께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아버지께 떼쓰듯이(심지어 단식까지 하면서) 간청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언제나 그 반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신 아버지께 ‘한 말씀 듣는 일’입니다.

그래도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는 아버지시라면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한 말씀’하시면 되는 것 아닐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그 일을 ‘먼저 그냥 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째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아버지는 ‘명령’을 전달받는 ‘종’으로 우리와 관계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유아’로 관계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와의 ‘사귐’, 즉 ‘소통’을 원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성숙한 자녀’이기를 원하십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는 우리와 ‘부부처럼 친밀한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부부나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은 ‘살가운 의사소통’입니다. 대화가 없는 친밀한 부부관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도 없이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 자주 나누어지는 의사소통이 혼배성사의 언약을 더욱 굳건히 합니다. 살가운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집중함으로써 해마다 부부는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그렇게 ‘정오’(正午)를 지나 ‘해지는 노년’에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혹은 단지 ‘잔기침’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대방에 맞추어 행동하며 보살피는 ‘신비한 관계’가 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가 됩니다.

저는 이것을 ‘기도 수행’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가 우리도 하느님과 ‘이심전심’이 될 것입니다. ‘빈말’, 즉 ‘입을 열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마태 6:7) 그 친밀한 사랑과 신뢰가 빛나는 그런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단지 무릎을 꿇고 침묵 속에 있어도 나의 마음이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할 것입니다. 한없이 용서하시는 자비의 아버지(마태 6:14), 가엾은 이를 구원하시는 아버지를 향할 것입니다(시편 34:6). ‘소리 없는 소리’, 즉 아버지의 말씀이 사명처럼 나의 마음에서 성취될 것입니다(이사 55:11). 이 일이 우리가 규칙적으로 기도 수행을 이어갈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기도 학교인 사순절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의식 변화의 학교에 우리는 6주간 입학하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기도 수행은 어떻습니까? 벌써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너스레를 떨 일은 아닙니다. 아직은 ‘무릎’이 하느님께 말씀드리도록 자신을 복종시켜나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인생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인생을 모릅니다. 우리는 오늘의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전 존재를 던져 침묵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한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모르는 사람임을 겸손히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도록 우리는 침묵 중에 기다립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침묵 속에 있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우리와의 대화와 사귐은 부부처럼 깊어갑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주님을 바라라,
자비와 연민 가득한 사랑의 주님,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
기도를 들으시는 너의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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