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0. 사순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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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여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58:9하-14
  • 시편 – 86:1-7
  • 복음서 – 루가 5:27-32

1독서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 단식, 축복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성전에서 격식에 맞게 봉헌하는 화려한 전례행위만이 예배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일상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단식’입니다. 우리의 일상과 일터가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단이자 거룩한 성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가 감사 예물이자, 예배이며, 선교입니다. 한마디로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 즉 ‘약자 편’이신 하느님을 닮아 인간다운 삶에 이바지하는 우리의 실천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이자, 단식입니다. 그 실천 속에 있는 이들이 바치는 간절한 기도는 주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들을 회복과 기쁨과 구원(치유)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시편 <86편>은 불쌍하고 가련한 이의 기도를 들으시는 자비하신 주님을 향한 찬미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몸’이라 묘사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자신을 굽어보시는 사랑과 연민, 자비와 용서하심이 가득한 분이라 찬미합니다. 우리가 그 하느님을 믿는 자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 즉 ‘약자 편’이신 하느님을 닮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 실천 속에 있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주님께서는 분명코 구원으로 응답해 주십니다(시편 86:16). 우리는 복음 이야기에서 시인이 찬미한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신 주님을 만납니다(시편 86:15).

복음 이야기 《루가복음》은 공생애 초기,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레위’가 잔치를 베풀 때 있었던 일입니다. 길을 가시다가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마태)를 보십니다(참고 마태 9:9).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부르십니다(루가 5:29). 오늘날 우리 눈에는 이 부르심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지금부터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해 갔기에 ‘민족의 반역자들’(배신자)로 불리며 미움을 샀습니다.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하여 로마당국에 약속한 만큼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강도들’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세리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부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마을공동체(관계)로부터 ‘추방’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세리는 회당에서 파문되었으며, 재판에서 ‘증인’이 될 자격도 없었습니다. 동족들은 그들을 ‘경멸’하면서 ‘최악의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불명예’는 가족에게까지 덧씌워졌습니다. 따라서 그런 직업군에 속하는 ‘레위’를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신 일은 예수님마저 한통속으로 보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기꺼이 그렇게 하십니다. 전부가 ‘사랑’ 때문입니다.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도 대단하시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한 ‘레위’ 역시 대단합니다. 지금껏 몸담았던 세금 징수 사업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이러한 그의 추종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 희생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레위’에 앞서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어부 출신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루가 5:1-11) 언제든 다시 자신들의 직업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위’의 경우는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제일 부자였던 사람이 ‘레위’였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는 모든 것을 버리는 대단한 ‘희생’을 감행한 셈입니다.

더욱이 따라나선 후에 이어지는 ‘레위’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님을 모실 만큼 자신이 찾은 ‘참된 기쁨’과 ‘행복’을 여러 사람 앞에 증명해 보입니다. 그가 자신이 찾은 기쁨과 행복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다음 장면을 읽으면서 상상해 보십시오.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들과 그 밖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 루가 5:20

그는 공동체에 속할 수 없던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들이 예수님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그들이 세리 일로 돈을 좀 모았을지 모르나 인생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정, 신뢰, 공동체, 기쁨, 정의 말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불쌍하고 가련할 뿐입니다. 레위는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기쁨과 행복을 결코 혼자만 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났습니다. 친구와 이웃들에게 참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소개해 본 적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혼자서만 하느님 나라에 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레위’를 통해 배웁니다.

큰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즉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요? 단지 먹고 마시고 춤추기만 했을까요?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회개와 용서에 대한 가르침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불쌍하고 가련한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중이셨습니다. 그들은 새 삶을 향한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당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잔치를 트집 잡을(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세리’를 제자로 부른 것도 모자라 그의 집에서 죄인이라 불리는 이들과 식사까지 나누는 일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고, 불쾌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 루가 5:30

그들은 악명 높은 죄인들과 친교를 나누며 먹고 마시는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한다는 ‘예수님’을 향한 비난입니다. 이일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비난할 때는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그들의 비난에 예수께서는 자기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가 5:31-32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며, 그 자리에 계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혼의 의사’라고 소개하십니다. ‘영혼의 의사’이시기에 영혼이 병들고 아픈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 즉 죄인들과 어울리는 일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비난하던 종교 지도자들도 영혼이 병든 이들입니다. 그들도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병들었다고 ‘독선’을 부렸습니다. 자신들을 당대의 ‘의인’이라 ‘자부’했고, 다른 사람들은 ‘죄인’이라 ‘경멸’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아프지 않다고, 자신들은 의롭다고 자부했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초대에 응답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신만만해하던 그들의 태도에서 나의 모습이 발견되지는 않습니까?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초대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수님은 죄에 물든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예수님은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치유 받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예수님의 진단과 처방은 항상 완벽하며 심지어 우리의 치유에 필요한 모든 ‘비용’까지 십자가에서 다 지불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의사가 세상 어디에 또 있단 말씀입니까?

사실, 사순절은 교만과 독선과 편견과 착각이라는 영혼의 병을 예수님께 치유 받는 시기입니다.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이 병든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살길이 열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이 병든 불쌍하고 가련한 죄인이고, 용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 용서를 간청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영혼을 치유하시러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잠시 침묵을 지킵시다. 생각나는 죄가 있다면 뉘우치는 마음으로 고요히 주님을 초대하십시오. 아니 이미 불러주신 주님의 초대에 겸손히 응답하십시오.

저를 창조하시고 빚어가시는 주님, 불쌍하고 가련한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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