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19. 사순3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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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여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58:1-9상
  • 시편 – 51:1-4,16-18
  • 복음서 – 마태 9:14-15

사순 3일차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자선, 기도, 단식, 재물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는 일로 출발 했습니다. 특히 교회 전통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이 세 가지 수행을 강조해 왔습니다.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단식은 자신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전례독서>는 그중에서 ‘단식’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성공회기도서>도 ‘대재일’(大齋日)인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 오전은 단식하도록 권합니다. 1독서 《이사야》에서 들은 것처럼, <구약성경>에도 단식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나옵니다(판관 20:26; 1사무 7:6; 열왕상 21:12; 시편 35:13). 이스라엘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호소하며 전례적으로 ‘단식’을 지켜온 전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는 그 비극을 상기하려고 해마다 오월이면 ‘단식일’을 정해놓고 전례적으로 지켜오기까지 했습니다(즈가 7:3,5).

<공관복음>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단식’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마태 4:2). 우리는 ‘광야의 유혹’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단식 수행’이 주는 신앙생활의 유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식 수행으로 자신의 사명을 올곧게 세우신 예수님 앞에서 악마의 유혹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단식’ 그 자체를 ‘악습’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마태 6:16-18).

문제는 전례적으로 ‘참회’의 표현이었던 ‘단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형식적’(피상적, 위선적)이 되고,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마태 6:16). 심지어 하느님께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한) ‘거래’로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수행하는 ‘단식’이 ‘종교적 위선’이나 ‘자기 과시’에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와 ‘자선’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고요히 하느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인 ‘자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두 끼 거르는 일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삶이 훨씬 가치 있습니다.

복음 이야기도 ‘단식’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금욕적으로 살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어째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느냐며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 마태 9:15a

예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세례자 요한이 출현해서 외칠 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던 세례자 요한은 옷차림새만큼이나 금욕적이고 엄격하게 행동했습니다(마태 3:1-4). 그의 선포는 즐거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잿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처럼 ‘금욕적인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례자 요한이 외치던 메시아가 이미 당도해서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식보다는 잔치가 제격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를 예로 드십니다. 신랑과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며 기뻐하는 친구들처럼 행동하는 일이 옳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메시아가 오시어 제자들과 함께 있기에 기뻐하는 일이 제격입니다. 도래하신 메시아를 통해 마치 ‘혼인 잔치’처럼 하느님과 인간이 전혀 새로운 기쁨의 관계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메시아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 9:15b

무슨 뜻입니까? 그 잔치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곧 ‘단식’이 필요한 ‘그날’이 올 것입니다. 어제 복음 이야기로 들었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날’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예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지금은 기쁨이 제격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명백히 변호해 주십니다.

이제 질문입니다. 그러면 사순절을 시작한 우리는 ‘단식’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까? 교회 전통과 <성공회기도서>는 사순절에 자발적인 ‘단식’을 권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단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음식을 끊는 일뿐 아니라 더 중요한 ‘진정한 단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진정한 단식이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고 있는 ‘죄의 일들’ 말입니다.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하게 만드는 악한 일들 말입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더럽힐 수 있는 악한 생각들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생각입니다. 하느님의 존귀한 자녀인 자신을 죄짓게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어그러뜨리고 파괴하는 이런 죄의 일들을 우리는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그 어떤 일(생각을 포함하여)들로부터도 ‘단식’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 말씀도 이런 진정한 단식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위선적’으로 변질한 ‘전례행위’를 ‘시정’(是正)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위선적인 전례’(형식적인 예배생활), 즉 ‘빈 위장’(단식)이나 ‘영혼 없는 예배’보다 ‘사회 정의 세우기를 좋아하신다’라는 선포입니다. 특히 ‘굶주린 자’와 먹을 것을 ‘오늘’ 나누고, ‘고통당하는’(쪼들린, 가난한, 기가 죽은) 이의 소원(배)을 ‘오늘’ 충족시켜주는 사랑의 일’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이처럼 정의와 나눔(사랑의 실천) 없이 행해지는 ‘단식’은 단지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들’(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일’과 ‘정의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단식’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런 단식이 실천될 때 비로소 ‘기도’와 ‘예배’가 응답 될 것이며 하느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단식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음식’에 대한 단식뿐 아니라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그 어떤 일(생각을 포함하여)들로부터도 ‘단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에게도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식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영원한 천국에 올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그 날 말입니다(묵시 19:9-10). 신랑이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그 날 말입니다. 이 소망으로 이번 사순절 동안 자신이 일상에서 지켜야 할 ‘진정한 단식’을 성찰해 보십시오. 자신이 일상에서 이어가야 할 ‘사랑과 정의의 실천’은 무엇일지 성찰해 보십시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극기’ 생활은 무엇일지 성찰해 보십시오.

성찰한 후에는 그것을 가지고 고요히 ‘기도’로 들어가십시오. 깊은 기도로 들어가면 ‘사랑과 정의의 실천’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처럼 ‘참회’할 필요가 있는 자신 안의 ‘불편한 진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참회’하는 그 ‘찢어진 마음’을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의 일’과 ‘정의의 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단식입니다. 그런 이들은 언젠가 주님의 제자들처럼 단식하지 않아도 되는 그 영원한 혼인 잔치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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