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8. 사순2일(목요일)

  • by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여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신명 30:15-20
  • 시편 – 1
  • 복음서 – 루가 9:22-25

사순 2일차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사순절 여정을 비대면으로 시작해서 걸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대면 상황이 바뀌지 않아서 몹시 아쉽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변화되었어야 할 더 근본적인 일을 성찰합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에게서는 과연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우리는 ‘탐욕’을 내려놓았을까요?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고난이 탐욕이 초래한 일임을 아직도 모른단 말입니까?

그동안 창조 질서를 보호하는 일보다 자연을 훼손해 온 인류라고 말하는 편이 정직합니다. 자연을 마구 낭비해 온 인류라고 말하는 편이 정직합니다. 그 모든 일의 바탕에 인류의 탐욕이 있었습니다. 탐욕이 만들어 낸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겪으면서도 인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과연 후세대에게 진정으로 미안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편견과 위선과 교만과 불의와 폭력에서 돌아서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우리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요?

우리는 어제 참회의 마음으로 재의 수요일을 지냈습니다. 주님과 우리 서로와 하늘과 땅의 모든 성인 앞에서 생각과 말과 행실로 저지른 죄와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고백했습니다. 특히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앞에서 자연을 향한 인류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인류가 새로워지도록 주님의 자비를 간구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리라 믿습니다. 이 사순절 끝에는 주님이 선물해 주시는 구원의 역사가 인류에게 넘치기를 기도하며 사순절 여정을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이 제자들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동시에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역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과연 이 두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까? 이 물음 앞에 진실해 보십시오. 제 경우에는 이 두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저는 고난 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는 죽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고난, 희생, 죽음 이런 말들은 이 시대에 전혀, 인기가 없습니다. 성공, 번영, 축복, 행복 이런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라면 지나친 말일까요? 그러나 이제라도 똑똑히 새겨 들으십시오.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삶은 고난, 희생, 죽음과 함께합니다. 분명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실제 삶은 고난, 희생,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희생, 죽음에서 결코 자신을 ‘면제’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일들을 마치 하느님 나라 운동에 나선 자신의 의무처럼 짊어지셨습니다. 초대 교회사에서 기념하는 성인들 대부분의 삶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에 고난도 받아들이십시오.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고난’으로부터 ‘면제’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십시오. 고난을 면제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예수를 따르는 일의 필수조건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현자’입니다. 우리 ‘스승’이신 예수께서 그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우리 역시 스승처럼 고난받을(고난에 동참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고난이 어떤 종류의 것이고, 우리를 어디까지 몰고 갈 것인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할 그 십자가, 나를 봉헌해야 할 그 십자가 역시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아마 여기까지 들으시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고요히 묵상해 보면, 두려움의 이유는 고난 그 이후의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간청합니다. 고난이나 십자가 앞에 저희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마시라고 간청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다음의 말씀까지 마음에 새겨두라고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루가 9:22

….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 루가 9:24

사랑하는 교우님, 이 모든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도록 하십시오. 영원한 구원의 새 계약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은 그 미래가 보장됩니다.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고난받는 이웃들의 삶에 변장하시고 나타나십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한(봉헌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아멘.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