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5. 부활 8일부 수요일

대한성공회 송파교회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사도 3:1-10
  • 성시 – 시편 105:1-9
  • 복음서 – 루가 24:13-35

부활 8일부 수요일입니다. <전례독서>는 ‘기쁨으로의 초대’입니다. 부활절기가 ‘기쁨의 시기’임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시편》은 ‘기쁨’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자랑하라고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장하신 일들을, 놀라운 일들을, 묘한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인이 ‘기뻐하자’고 초대하는 그 일이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부활’을 예고한 것임을 압니다.

1독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이 가진 힘’을 빌어 놀라운 기적을 행합니다. 이 기적이야기가 오늘부터 시작해서 금주간 1독서의 이끌어 가는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기적의 대상이 된 사람은 ‘마흔 살’이 넘은 장애인입니다. 묵상이 깊어지면 저절로 아시게 되겠지만 사실 그는 우리 인생을 상징합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장애인이었기에, 죄의 벌을 받는 중이라 멸시를 받았습니다. 성전 문 앞까지만 허락될 뿐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간청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이름에 붙잡힌 성령의 사람들을 만나자 삶이 달라졌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주님의 이름이 가진 능력’을 빌어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태어난 처음으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면서 ‘기쁨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몹시 놀라 어리둥절해졌습니다. ‘함께 기뻐’할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복음이야기는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열 한 제자와 함께 ‘부활을 확인’하고 ‘기뻐’합니다.

이렇게 전례독서는 ‘기쁨으로의 초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의 초대가 무색하게 요즘 우리는 고통과 고난 속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세계가 우울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사람처럼 전 세계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있습니다(루가 24:17). 코로나19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모든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어 둔 사도들처럼 격리되어 있습니다. 일상과 일터는 멈추었으며, 성당과 교회도 폐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명절이고, 《시편》의 찬미처럼 주님께서 인류에게 행하신 가장 놀라운 일인데도 우리는 마음껏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성전 미문에 있던 그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절망 속에 있던 사도들을 도우신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이 그 장애인을 도운 것처럼, 우리도 낙담하는 사람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믿는 우리가 바로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의 착한 이웃이어야 합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무색할 정도로 기쁨을 잃어버린 세상 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담하는 세상에 ‘용기’를 주도록, 절망하는 세상에 ‘희망’을 주도록 ‘부름 받고 있는 부활의 증인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은 자기 혼자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간직하고(빌립 2:5) 이미 받은 부활의 은총을 이웃에게로 흘려보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비로소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몸짓은 주님께서 ‘최후만찬’ 자리에서 행하신 ‘성스러운 나눔’이었기 때문입니다(루가 22:19-20). 물론 이 ‘알아봄’은 예수님의 ‘말씀 풀이’를 통해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진실을 깨달으셨으니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착한 일들’을 있는 자리마다에서 실천하십시오. 문자든, 전화든, 편지든, 마스크 나눔이든, 작은 사랑의 나눔을 가족과 이웃에게 보여주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나눔과 환대의 사람들’임을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그 ‘환대의 출발’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는 ‘작은 것을 나누는 일’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고요히 두 손을 모으고 《시편》 시인처럼 기도로 들어갑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소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그 구원의 은총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데 저를 사용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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