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4. 부활 8일부 화요일

대한성공회 송파교회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사도 2:36-41
  • 성시 – 시편 33:4-5,18-22
  • 복음서 – 요한 20:11-18

부활 8일부 화요일입니다. 예수님을 몹시 사랑하고 공경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흘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그 여인의 인생도 끝났습니다. 이른 새벽에 장례예절을 지키러 ‘무덤’을 찾아올 정도로 아직도 식지 않은 ‘애타는 사랑’과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전혀 ‘생기’가 없었습니다. ‘절망’이라는 줄의 가장 뒤에 그녀는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버려진 것처럼, 아무도 자신을 보아줄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오늘 《시편》으로 찬미한 것처럼(시편 33:18-19), 그녀를 지켜보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그 사랑을 바라는 자들을 지켜보시며 목숨을 건져주시고 살려주시려는 분이 계셨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야!”하고 그 ‘이름’을 다정히(둘만 아는 어떤 신호처럼) ‘아끼며’ 불러주십니다(요한 10:27).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녀는 살아났습니다. ‘희망’이라는 줄을 뛰어 넘어 ‘기쁨’이라는 줄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애타게’ 주님을 찾던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첫 번째 사람으로 그 순간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름’은 ‘한 존재의 영혼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따라서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한 존재를 향한 ‘인정’과 ‘존중’과 ‘사랑’과 ‘수용’을 뜻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 존재의 필요에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정’과 ‘존중’과 ‘사랑’과 ‘수용’이라는 ‘영혼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맙게도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시편》에서 찬미한 것처럼(시편 33:20-22), 우리의 그러한 필요에 가장 잘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라뽀니”라고 부릅니다. 그녀가 돌아서서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요한복음》 기자가 다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특별’했습니다. 인생들 중에서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최초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그 분의 양인 자신이 이전부터 알고 있던 바로 그 ‘착한 목자’이신 분입니다. 전혀 다르지만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확신을 갖고 ‘선생님’하고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것 같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어 그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양을 향한 착한 목자의 ‘사랑’을 확인해 주셨고, 그녀가 살아가야 할 ‘궁극적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끄셨습니다. 한마디로 ‘사명’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사명을 확신시켜 주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그녀를 ‘사도로 임명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에 ‘파송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럴만한 인물로 ‘마리아’를 ‘신뢰’하시고 ‘파송’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뢰’는 옳았습니다. 이제 ‘죽음’에서, ‘절망’에서 되살아나 ‘생명’을, ‘기쁨’을 간직한 그녀는 가서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죽은 것 같은 제자들, 자신처럼 절망이라는 줄의 가장 뒤에 서 있는 ‘주님의 형제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최초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부활대축일은 주님의 부활만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부활대축일은 교회를 위한 날이고, 그리스도인을 위한 날이며, 나 자신을 위한 날입니다. 당신만을 바라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해 주신 것처럼, 우리 ‘존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는 ‘착한 목자이신 부활의 주님’께서 ‘인정’과 ‘존중’과 ‘사랑’과 ‘수용’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신 날입니다. 우리를 신뢰하시어, 1독서 《사도행전》의 베드로처럼,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고 ‘사도’로 세상에 ‘파송’하심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기는 바로 이것들을 되새기고 ‘새롭게 창조되며 변화’되어 가는 기간입니다.

주님은 오늘 “마리아야!” 하고 착한 목자처럼 ‘그 이름’을 아끼며 불러주십니다. 몹시 그리운 이름을 간직한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이틀 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6주기’입니다. 그 곱고 아까운 이름들을 가슴에 간직한 어머니들을 기억하며 고요히 두 손을 모으고 《시편》 시인처럼 기도로 들어갑니다.

주님, 당신 안에 저의 기쁨이 있고, 제 믿음은 거룩하신 당신의 이름에 있나이다. 제 영혼은 애타게 당신만을 바라오니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을 저에게 베푸소서. 특별히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이들과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를 기억해 주소서. 우리는 그들을 잊더라도 주님만은 그들의 이름을 꼭 기억하시고 마지막 날 불러 일으켜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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