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1. 성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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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나이다. 비오니, 부활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도 죄의 무덤에서 일어나 주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욥기 14:1-14
  • 성시 – 시편 31:1-4, 15-16
  • 2독서 – 1베드 4:1-8
  • 복음서 – 마태 27:57-66

성토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은 교회력의 다른 날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상중’(喪中)입니다. 성당 안에는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막(감실)의 등도 꺼져 있습니다. 전례적으로 ‘주님의 부재’(不在)를 상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모든 것이 역전될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분명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무덤을 빌려 거기에 묻히셨습니다. 그 죽음은 제자들과 주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에게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일 새벽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부재의 시간이 ‘경계’(境界)의 시간임을 압니다. 희망의 경계, 승리의 경계, 영광의 경계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그 부재의 시간은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건설되는 기간이었습니다. 1독서 《욥기》에서 읊은 것처럼, “하루살이와 같고, 꽃처럼 피었다 스러지며,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인생들, 그 별 수 없는 인생들”에게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준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말하기 전에 침묵합니다. 오늘 아침 하느님께서 ‘어둠’ 속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슬픔’ 속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실’ 속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불확실’ 속에 계십니다. 우리를 ‘그 어둠’, ‘그 슬픔’, ‘그 상실’, ‘그 불확실’ 속에서 ‘풀어주시려고’ 지금 ‘무덤’ 속에 계십니다.

복음이야기는 우리의 이 희망이 진실임을 증언하기 위해 두 여인을 등장시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그들은 무덤 맞은편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슬픔 속에서, 상실감 속에서, 불확실 속에서 그들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무덤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죽음이 결코 마지막이 아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주님께는 아무런 힘이 없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들은 희망의 빛이 솟아오르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침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내다보고 찬미한 《시편》 시인처럼(시편 31:15-16), 우리의 죽음 이후도 주님께 의탁하며 고요히 두 손을 모읍니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답게(1베드 4:1-8) 오늘 살 것을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도 죽음이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씀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주님, 한결같은 그 사랑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몸을 영원히 의탁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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