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이 주는 기쁨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권세의 맛을 본 사람들이 이제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욕을 보이는 셈이니 그들에게는 다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받아서 진리를 깨닫고도 짐짓 죄를 짓는다면 다시는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릴 수 있는 제물이 없고, 다만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켜 버릴 맹렬한 불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성서에 ‘오늘’ 이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 날마다 서로 격려해서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넘어 가 고집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언제부터 하느님을 잊어버렸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의도적으로’ 선한 길을 버리고 ‘욕망’을 따라 갔는지도 모릅니다. ‘존재의 중심’에 계신 하느님이 쉬지 않고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쾌락’에 ‘중독’ 된 당신은 좀 더 자극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생명’을 ‘악마’에게 저당 잡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쾌락의 끝’은 늘 죽음 같은 ‘자괴감’이었습니다.

이제 이 끝에서 다시 돌아서려 하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하느님의 ‘심판’이 공포로 엄습해 옵니다. ‘용서’를 청하려 해도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두려운 생각이 숨통을 콱 조여 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사랑의 주님이 친히 지어내신 ‘잃었던 아들’(루가15:11-24)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발길을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할 일은 비참한 자신에게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향하는 일입니다. 변함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께로 가는 일입니다. 심판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 밖에 모르시는 그 분께로 말입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종말의 시간은 ‘영원한 죽음’의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신랑과 함께 참여하는 ‘영원한 혼인잔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있게 될 그 자리에 대한 결과는 종말의 때에 가서 비로소 결판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지금’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르시고 기다리시고 찾아오시는 무한한 사랑에 대해 ‘예’ 라고 돌아서는 ‘여기서’ 말입니다.

[사도들의 편지 2020] 오정열 애단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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