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19. 사순 20일(성 요셉 축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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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요셉을 선택하시어, 육신으로 나신 성자 예수의 보호자이며 성모 마리아의 배우자로 삼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바른 생활과 순종을 본받아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사무하 7:4, 8-16
  • 성시 – 시편 89:27-36
  • 2독서 – 로마 4:13-18
  • 복음서 – 루가 2:41-52

사순 20입니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 성인의 축일입니다. 성인을 호수성인으로 하는 모든 신자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축일입니다. 교회가 성인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도구로 바친 거룩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하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정말이지 그는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특히 ‘겸손’하고 침착하게 주님의 뜻에 ‘순종’한 보호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실 때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실천하였습니다. 알려주시는 방법이 ‘꿈’이었지만, ‘식별’할 수 있는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모’를 선택하심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듯이, ‘요셉’을 예수님의 양부로 선택하심도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선택은 언제나 옳고 섬세하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도 분노했습니다. 둘은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곧 있게 될 결혼생활을 위해 마리아는 신부수업에 충실해야 했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히 지참금을 모아야 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소식을 듣고 그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마음의 호수가 폭풍으로 휘몰아쳤습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폭풍치던 호수가 다소 잔잔해졌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대로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디 심성이 착하고 사려 깊던 그는 ‘남모르게 조용히’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마태 1:19).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왔을 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그를 향한’, 정확히 말하면 그가 행해야 할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는 천사가 일러 준 하느님의 뜻에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마태 1:20-24). 그만큼 그 메시지를 ‘식별’할 정도로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신만을 위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공의가 아니라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했습니다. 판단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대로 ‘겸손’하고 침착하게 하느님께 ‘순종’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마리아는 파혼을 피할 수 있었고 삶의 최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하늘에서 가슴을 졸이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시던 하느님도 천사들과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셨습니다. 이후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를 더욱 깊이 사랑하며 책임감 있게 가정을 돌보았습니다.

고요히 우리 자신과 가정을 성찰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선택도 은총입니다. 주님을 향한 성인의 ‘겸손’과 ‘순종’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도 주님을 향한 ‘겸손’과 ‘순종’으로 항상 살고 있습니까? 마리아와 예수를 향한 성인의 그 깊고 희생적인 ‘사랑’에 비추어 가정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자녀를 깊이 사랑하고 충실히 돌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이기적인 자아를, 판단하는 마음을, 분노를 일으키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까?

갈수록 결혼생활이 위기를 겪는 가정들이 늘어납니다. 요셉을 통해 가정을 지켜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성찰합니다. 그것은 ‘물질의 풍요’에 있지 않습니다. 그 힘은 하느님을 중심에 모신 ‘신앙’에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욕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식별’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신만을 위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정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판단하는 마음과 분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제일 많이 벌어지는 일이 의외로 그런 일들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그런 것들이 차지하고 휘젓고 다니도록 허락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거룩함의 시간’을 부부가 갖지 않기에 가정은 위기를 맞습니다. 부모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숭고한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도 똑같이 합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다 보면 부부는 저절로 서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굳이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이야기에 따르면 ‘성가정’은 ‘거룩함의 시간’을 갖는 가정입니다. 해마다 과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부모는 어린 예수가 세상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통해 어린 예수의 마음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규율, 예배생활의 중요성을 심어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의 기초를 심어주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성당에 데려오는 일은 후순위로 밀립니다. 자녀들도 이제 머리가 컸다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학원을 몇 곳씩 보낼 정도로 많은 정성을 기울이면서 정작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놓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부모의 권위는 점점 추락해 갑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는 점점 사라져 갑니다. 부모를 향한 ‘공경도’는 점점 떨어집니다. ‘성’과 ‘결혼’에 대한 신성함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교회는 세상에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이 모든 일의 근원에는 자녀를 하느님께로 인도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가 있습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아버지로 살고 있습니까? 요셉처럼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키워 가십시오. 어머니로 살고 있습니까? 마리아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시고, 자녀의 말에 보다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먼저 부부가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십시오. 가정 안에서부터 그 일을 하십시오. 성당에 오기 전에 자녀들은 가정이라는 교회에서부터 신앙의 기초를 배워야 합니다.

성가정은 우리의 모본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온 가족이 성당에서 함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한다는 모본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우리의 신앙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말이지 부모는 자녀들의 최초의 신앙교사이자, 신앙의 보호자이며, 인생길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꿈꾸고 있다면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의 사람 요셉이 되겠다고, 기도의 사람 마리아가 되겠다고 다짐하십시오. 성가정처럼 자녀를 양육해 가십시오.

고요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영원한 가족이 된 ‘복’을 굳게 지켜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의 삶을 요셉처럼 세상의 구원을 가져오는 거룩한 도구로 써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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