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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18. 사순 19일(수요일)

본기도

우리의 구원이신 하느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종의 굴레를 벗기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죄악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신명 4:1, 5-9
  • 성시 – 시편 147:12-20
  • 복음서 – 마태 5:17-19

사순 19입니다. 복음이야기는 ‘학생들(제자)을 위한 참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는 ‘산상수훈’입니다. 우리가 이 가르침을 통해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학생이 될 뿐 아니라 언젠가 좋은 스승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말씀나눔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 5:17

율법과 예언서는 《성경》을 가리키는 당대의 표현입니다. ‘완성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 즉 ‘인생길의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가르치시어’ 사람들이 그 《성경》을 잘 ‘지킬 수’ 있게 하려고 오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진리를 세상 누구보다 정확히 ‘알아듣고’ 온전히 ‘이행’하시는 ‘스승’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남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학교 교사나 성직자들은 제가 하는 이 말씀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즉 율법과 예언서는 ‘교과서’이고, 예수께서는 ‘스승’이며, 우리는 ‘학생’(제자)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반대자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율법 해석’을 트집 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나쁜 선생’이라고 ‘악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모세로부터 교원자격증을 받았는데, 교원자격증도 없는 예수께서 교사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그것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교원자격증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산상수훈에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주목하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가장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나라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모본’하여 스스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의 그의 자리를 결정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참 스승이신 예수님을 ‘모본’하여 우리도 좋은 스승이 되어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인생길의 진리’를 주신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을 통해 우리가 가장 잘 배워야 할 율법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이런 가르침을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 마태 22:37-40

‘골자’라는 말씀은 요점이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 즉 《성경》의 ‘정신’이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며, 《성경》을 완성하는 삶입니다.

말씀 나눔을 마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무엇을 통해 표현할 것입니까? 우리가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정신인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으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심지어 사랑의 책인 《성경》을 가지고 ‘영원한 사랑’(영원한 생명)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무기로 사용하는 나쁜 스승들도 많습니다.

어느덧 사순절 여정의 절반을 걸어왔습니다. 내일이면 딱 절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유치원의 개학이 더 늦추어졌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를 강행한 몇 몇 교회들로 인해 줄어들었던 확산세가 소폭 증가하고 있습니다. 월세를 내야하는 작은 규모의 교회나 임대교회의 사정을 들어보거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삼가야겠습니다. 또 어려움을 겪는 작은 규모의 교회 뿐 아니라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교회들이 ‘사랑’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대처를 보면 아쉬운 면이 많은 요즘입니다.

다른 사람들 탓하기 전에 제 자신부터 돌아봅니다. 정말 ‘사랑의 수행’을 잘 이어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통해 ‘새로움’(거듭남)을 수행해 가는 이 절기에 참으로 하늘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라고 주님이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성심껏 지키라’고 호소하는 모세와 ‘말씀’을 보내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인의 심정으로 고요히 기도로 들어갑니다.

주님, 옳은 일을 하라고 부르셨나이다. 선한 일을 하라고 일깨우시나이다. 거룩하게 살라고 파송하시나이다. ‘사랑’이 전부임을 십자가를 통해 배웠으니 그 말씀대로 살아 볼 기회를 주신 이 때에 잘 실천하게 하소서. 제가 언젠가 좋은 스승이 될 착한 학생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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