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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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체험을 했습니다. 체험이라고 하니 좀 거창해 보입니다. 살고자 온 몸으로 제 존재감을 알려오는 장의 몸부림을 견디다 못해 결국은 새벽녘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무려 119씩이나 불러 경찰병원 응급실행. 구급요원이 팔에 혈압기를 감고 혈압을 체크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100분 공감합니다. 평소에는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가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던지.

침상에 누웠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당직 의사가 몇 가지를 물어봅니다. 진단명은 장염. 불행 중 다행입니다. 왼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간호사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습니다. 전날, 사랑하는 신부님들 식사대접 한다고 모신 일이 떠오릅니다. 괜찮은지 연락하려는데 손전화 집어들 기운이 반의 반개도 나지 않습니다. 아프니까 비로소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수액과 약물투여 주머니를 매답니다. 스쳐가는 생각은 주일미사입니다. 그중에서도 설교입니다. 사제는 매주 성찬례를 위해서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합니다. 좀 과장하자면 ‘생명’을 낳는 일처럼 수고로운 고도의 정신노동입니다.

아프니까, 더군다나 병원신세까지 지고 있으니 요령을 부릴까요? 15년 넘게 제단에서 설교를 해 왔고, 성서정과에 따라 3년마다 반복되는 본문이니 그 중에 한 편을 다듬어서 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 삶의 길이 아닙니다. 성서정과는 그대로일지 몰라도 이미 청중이 어제의 청중이 아니고, 삶의 자리도 변했으며, 저 역시 어제의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여 감동스럽게 다가온 지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이런 걸 자뻑이라 하더군요), 오늘의 성숙한 청중과 제 눈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설교문 쓸 때의 원칙은 옛날 것은 거들떠도 안 본다 주의입니다. 어제의 내가 아니라 매순간 만들어져 가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중하듯이 신자들도 소중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서 있는 설교대 뒤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직 의사가 오더니 갈비뼈 아래를 꾹꾹 누르며 아프냐고 물어봅니다. 뭐라 해야 할지… 그럼, 누르면 아프지 안 아픈 사람 있을까? 좀 있다 열 좀 내려가면 엑스레이 찍잡니다. 휠체어씩이나 타고 이동합니다. 분주히 오가는 병실 안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면서 “사람이 설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우들에게도 제 모습이 그랬을까요?

신 새벽에 저 같은 응급으로 실려 온 환자가 벌써 4명이 넘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다행히 열도 내리고 엑스레이도 이상 없답니다. 엑스레이는 뼈 보는 거 아닌감? 왜 찍었던 게지? 아무튼 침상에 돌아와 수액주머니 물 똑똑 떨어지는 것을 지켜봅니다. 간호사가 오더니 약 먹어야 한다면서 내밉니다. 세어보니 6알이나 됩니다.

누우려다 갑자기 오전에 있는 성서공부모임이 생각나서 교우에게 상황을 알리는 문자를 보냅니다. 그냥 쉬라 했는데도 ‘흰죽’ 써온다는 고마운 문자입니다. 다른 교우로부터 퇴원 때 픽업하겠다는 고마운 문자도 왔지만 몰골이 도무지 말이 아니라서 정중히 거절합니다. 사제도 교우에게 멋지게 보이고픈 비밀이 있답니다. 우리 모니카는 자기 없는 티 팍팍 낸다며 핀잔 문자가 옵니다. 모니카는 언니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교사로 가 있기에 저희도 주말부부입니다.

어떻게 마음이 통했는지 며칠 전 월요일에 함께 밥 먹었던 동기사제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그 역시 장염으로 고생 중이라며 얼마나 힘드냐고 위로합니다. 그로부터 연락 온 걸 보면,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마음의 연락망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다 점심 약속한 제주 사는 동기사제 방문약속 생각이 나서 급히 전화합니다. “오늘은 같이 죽 먹어야겠다. 그래도 와라. 보고 싶으니까!” 사실 어제 오전 일찍, 생명평화 노래 공연할 일 있어서 경기도 광주에 가는데, 함께 점심 먹자며 공항 내리자마자 전화 왔었습니다. 점심에 공부약속이 있어서 다음날인 오늘로 연기했습니다.

점심 무렵 퇴원했습니다. 교우가 흰죽을 데우러 식당에 내려갑니다. 동기 사제 기다리면서 어제 다녀간 신부님들께 연락해 봅니다. 다행히 모두 무사(?)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고마운 분들을 위해 기도를 바칩니다. 꼭두새벽에 수고해 주신 119 구급대원들, 당직 의사와 간호사들, 마음 써 준 교우들과 동기사제. 주님이 복주시기를.

나비에게는 나비의 자리가 있듯이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체험한 몇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정열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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