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0. 사순 1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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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십 일을 금식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극기의 은총을 내리시어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1:10,16-20
  • 시편 – 50:8,16-23
  • 복음서 – 마태 23:1-12

사순 12일입니다. 오늘 복음이야기를 읽을 때면 생각나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미국성공회에서 사목하시는 데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분은 어딜 가나 ‘최상석’이었고, 그 분 옆에 있으면 누구나 ‘최상석’을 차지한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신부님이었습니다. 이쯤하면 우리 신부님들은 다 웃으실 텐데 그 분 이름이 ‘최상석’입니다. 선교교육원장으로 일하시면서 제가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 주신 분이었는데, 그 분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복음이야기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에 계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모세의 자리’는 회당 안에 있던 ‘최상석’(最上席)입니다.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은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고, ‘명예’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그들이 배우는 이들에게는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는 ‘돈’ 보다는 ‘명예’를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는 표시로 몸의 차림새를 크고 화려하게 했습니다. 모두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존경’을 받고자 추구하였습니다. ‘랍비’(스승)라는 말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하느님과 자신과의 내밀한 관계라는 점을 망각한 행동입니다. 하느님보다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위선’입니다.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입니다. 그런 위선과 교만은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잠언 18:12). 다른 사람들, 특히 ‘제자들’에까지 악영향을 끼칩니다.

예수님은 그런 엉터리 스승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가르칠 ‘참된 스승’(궁극적으로는 메시아)을 소개해 주십니다. 율법이 가리키는 다가온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칠 ‘궁극적 스승’을 소개해 주십니다. ‘형제애’를 통해 ‘의’(義)에 이르는 길을 가르칠 ‘한 분 뿐인 스승’을 소개해 주십니다. 그 한 분뿐인 스승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궁극적 아버지’를 소개해 주십니다. 누구나 육신의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 오기에 부모를 공경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삶이야말로 영원하고, 궁극적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올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차례로 왔지만 우리가 돌아가야 할 ‘나라’는 만물을 내신 아버지의 ‘품’으로 똑같습니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의 부모가 다가오는 세상에서도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마태 22:23-32). 육신의 아버지가 오는 세상에서도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신 궁극적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올바른 지도자’를 소개해 주십니다. ‘지도자’는 말 그대로 ‘가야할 바른 길을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인생이 가야할 바른 길이 ‘율법’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참된 지도자’라면 율법을 가장 정확히 가르쳐 줄뿐 아니라 모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참된 지도자 상에 맞는 인물이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진정한 ‘정신’인 ‘사랑’을 가르치시고, 몸소 모본을 보인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해 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참된 스승, 궁극의 아버지, 올바른 지도자를 소개하신 다음 ‘섬김’과 ‘겸손’을 교훈하십니다. ‘으뜸가는 사람’은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배운 사람입니다. ‘익을수록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일수록 성숙해져야 합니다. 참된 성숙은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어’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높여주십니다.

오늘도 《이사야》 예언자가 요청하는 것처럼(이사 1:10),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자신을 성찰합니다. 신앙은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합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향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노래한 것처럼(시편 50:16-20)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표시는 사람을 향한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다만 우리의 행동이 순수하게 하느님을 향한 행동인지, 아니면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행동인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압니다.

주님, 저는 가르침과 사랑의 행동이 일치하신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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