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9. 사순 11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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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십 일을 금식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극기의 은총을 내리시어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다니 9:4-10
  • 시편 – 79:8-9,11,13
  • 복음서 – 루가 6:36-38

사순 11입니다. 오늘 복음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교훈합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 글자를 모르는 분은 없습니다. 당연히 문장도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교훈대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회관계에서 우리는 자비롭지 못했던 때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 입술에는 비판과 단죄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않았으며 베풀지도 않았습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자나!’ 이러면서 말입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님은 측은히 보시며 재차 말씀하십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비판하지 말아라… 단죄하지 말아라… 용서하여라… 남에게 주어라…

주님 앞에 손을 모읍니다. 1독서의 다니엘처럼, 마음 속 생각과 은밀한 일까지 다 보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고 회개의 기도를 바칩니다. 시편의 시인처럼 우리의 죄를 고하며 자비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자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중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들어가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용서의 나라’에 삽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다면, 우리는 이 나라 안에서 오직 자비와 관대함과 용서와 연민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그것이 ‘자비의 나라’ 안에 있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말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에 살고 있는 모두를 그렇게 대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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