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4. 사순 7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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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십 일을 금식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극기의 은총을 내리시어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요나 3:1-10
  • 시편 – 51:1-4,16-18
  • 복음서 – 루가 11:29-32

사순 7일차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 3일차의 주제였던 ‘회개’에 대한 <전례독서>를 다시 한 번 듣습니다. 사실 사순절 여정은 우리가 ‘회개’를 통해 사랑 많으신 아버지께로 온전히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에서 벗어났던 우리가 다시 그 길 위로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요구하며 모여든 세대를 향해 이렇게 탄식하시며 선언하십니다.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 루가 11:29

예수께서는 자신을 유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한 예언자 ‘엘리야’와도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언자 ‘요나’와 비교하십니다. 요나는 어떤 예언자였습니까? 그의 명성이 ‘큰 물고기’에 삼켜져 버릴 정도로 일반적으로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요나’ 예언자에 비교해 자신의 사명을 언급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 루가 11:30

이 말씀으로 자신의 사명이 ‘회개’와 ‘용서’임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오늘 1독서에서 요나 예언자는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니느웨’ 사람들에게 임박한 하느님의 진노를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요나의 처음 예상과 달리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이전의 계획을 돌이키시어 ‘니느웨’에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시었습니다. 아마 요나는 회개 때문에 스스로의 계획마저 바꾸신 하느님 때문에 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신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너무나 인간적인 예언자에 대한 관련설교는 여기를 보십시오(2018.1.21. 연중3주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요나’와 같은 일을 하러 오셨습니다.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한 도시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을 선물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올바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 용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신 것으로 서술하지만(루가 5:29-30)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용납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바로 잡아 주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순 4일차’에 들은 복음이야기처럼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시느라 예수께서는 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루가 5:31-32). 다시 말해 자신의 행동을 죄악으로 여기지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데 예수께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을 ‘죄인’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시각에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은 ‘의인’이기에 구세주가 필요 없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오만’과 ‘어리석음’을 경고하십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그들만이 아니라 ‘군중’들 속에 깊이 뿌리내린 ‘마음의 광기’와 아담과 하와 같은 ‘불순종’까지도 경고하십니다. “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입니다(1열왕 10:1). “심판 날이 오면” 그 옛날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입니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오만’과 ‘어리석음’은 결국 ‘단죄’를 당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요나’나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봉헌하는 ‘감사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표’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성찬례로 모일 때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치유, 지속적인 도움을 간청합니다. 이 간청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죄인이며, 영혼이 병든 병자이며, 나약한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또한 이 간청은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특히 심리학자나 상담가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개인은 스스로를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으며,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겸허한 인정입니다. 다시 말해 오로지 주님께만 용서의 권세가 있고, 우리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권능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나눔을 마칩니다. 사순절은 어떤 의미에서보자면 ‘모방의 시기’입니다. 특히 오늘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모방’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19 감염병’ 때문에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우리는 ‘영혼이 병든 이들’, 즉 ‘죄악의 전염병’에 ‘감염’되어 있는 이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한 ‘병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똑바로 알아차리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모방’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일어난 ‘용서의 은총’이 우리에게 일어남을 체험합니다. ‘회개’라는 영적 덕목의 유익이 육체가 아니라 우리 영혼(마음)에서 진정으로 일어남을 맛보게 됩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오늘 《시편》을 우리 삶으로 성취하는 또 한 사람의 ‘시인’이 됩니다.

오늘도 주님의 용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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