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28 사순 3일(금요일)

대한성공회 송파교회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여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설교

성경 본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독서 – 이사 58:1-9상
  • 시편 – 51:1-4,16-18
  • 복음서 – 마태 9:14-15

사순 3일차입니다. 고대로부터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일어난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 가령 ‘출애굽’, ‘시나이산 계약’, ‘광야의 여정’ 등을 ‘전례’를 통해 ‘재현’하며 기념했습니다. 다시 말해 전례 속에서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이 그들의 믿음과 경험으로 ‘현재화’되곤 했습니다.

‘단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호소하며 전례적으로 ‘단식’을 지켜온 전통이 있습니다(판관 20:26; 1사무 7:6; 열왕상 21:12; 시편 35:13).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는 그 비극을 상기하려고 해마다 오월이면 ‘단식일’을 정해놓고 전례적으로 지켜오기까지 했습니다(즈가 7:3,5).

문제는 전례적으로 ‘참회’의 표현이었던 ‘단식’이 점차 ‘형식적’(피상적, 위선적)이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즈가 7:5). 심지어 하느님께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한) ‘거래’로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1독서 《이사야》는 ‘위선적’으로 변질된 이러한 ‘전례행위’를 ‘시정’(是正)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위선적인 전례’(형식적인 예배생활), 즉 ‘빈 위장’(단식)이나 ‘영혼 없는 예배’보다 ‘사회 정의 세우기’를 좋아하신다는 선포입니다. 특히 ‘굶주린 자’와 먹을 것을 ‘오늘’ 나누고, ‘고통 받는’(쪼들린, 가난한, 기가 죽은) 이의 소원(배)을 ‘오늘’ 충족시켜주는 사랑의 일’을 하느님은 좋아하십니다. 이처럼 정의와 나눔(사랑의 실천) 없이 행해지는 ‘단식’은 단지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들’(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정의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단식’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런 단식이 실천될 때 비로소 ‘기도’와 ‘예배’가 응답될 것이며 하느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사순절 살아가는 우리가 깊이 되새겨야 할 실천입니다.

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처럼 전통적으로 교회도 사순절에 ‘자선’(사랑과 정의의 실천)과 ‘기도’와 ‘단식’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 세 가지 ‘자기 수행’을 통해 사순절 여정을 시작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다는 취지에서입니다. 한마디로 ‘의식의 변화’(성화)에 이르자는 의도에서입니다.

사실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 ‘단식은 자신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 세 가지 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단식’이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기도’와 ‘자선’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고요히 하느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인 ‘자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 두 끼 거르는 일보다도 사랑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삶이 훨씬 가치 있습니다.

복음이야기는 어제에 이어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날’에 대한 예고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고를 ‘단식’이야기에 담아내십니다. 본래의 문맥은 ‘옛 계약’(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과 ‘새 계약’(새 천조각, 새 포도주, 새 부대)의 차이를 밝혀주시는 가르침의 앞머리입니다(마태 9:14-17).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잡수실 때의 일입니다. 금욕적으로 살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 마태 9:14

그들의 스승인 세례자 요한의 사역은 어땠습니까? 옷차림새와 선포만큼 그의 사역은 엄격했고 겸손한 회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마태 3:1-4). 한마디로 그의 사역은 ‘금욕적’이었고, 즐거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잿빛’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이 같은 세례자 요한을 흉내 내면서 ‘단식’을 포함한 ‘금욕적인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단식’은 당대에 자신을 의롭다하는 이들이 행하던 전례적 행위였습니다.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무려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단식했습니다(루가 18:12).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역겨운 행위였습니다.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이었습니다(마태 6:16-18). 오늘 성시 <51편>에서 노래하듯이 진정으로 ‘참회’하여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그러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예수님 제자들의 ‘내면’을 보기라도 하는 냥 ‘판단’(사실은 정죄)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예수님 일행은 ‘단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 마태 9:15a

예수께서는 ‘지금은 단식할 때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단식할 수 없다고 내세우신 ‘원칙’은 ‘혼인잔치’입니다. 혼인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며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메시아가 오시어 제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먹고 즐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메시아 시대’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단식할 때가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단식, 즉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을 흉내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할 뿐이었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보여준 금욕적인 태도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따라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처럼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도하신 메시아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 9:15b

무슨 뜻입니까? 그 잔치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곧 ‘단식’이 필요한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날’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지금은 그 날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명백히 변호해 주십니다.

이렇게 오늘 1독서와 복음이야기는 ‘자기 과시’와 ‘종교적 위선’으로 행해지던 ‘단식’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다시말해 ‘단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행하는 이의 ‘속마음’과 단식을 통해 그가 시도하려는 ‘일의 가치’입니다.

이 시간 ‘단식’에 대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사순절 동안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랑과 정의의 실천’은 무엇일지 성찰하십시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극기’ 생활은 무엇일지 성찰하십시오. 다 성찰한 후에는 그것을 가지고 고요히 ‘기도’로 들어가십시오. 깊은 기도로 들어가면 ‘사랑과 정의의 실천’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처럼 ‘참회’할 필요가 있는 자신의 ‘불편한 진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참회’하는 그 ‘찢어진 마음’을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단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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